
26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유벤투스와 팀 K리그와의 친선경기가 끝난 뒤 이날 출장하지 않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왼쪽 세번쨰)가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유벤투스와 K리그 선발팀인 ‘팀 K리그’간의 경기. 경기 종료를 앞두고 경기장에 때아닌 ‘메시’를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여기에 유벤투스 최고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가 전광판에 비칠 때마다 엄청난 야유가 울러 펴졌다. 불과 세시간여전만 해도 경기장을 찾은 6만여 팬들은 함께 호날두의 이름을 연호하고, 그가 모습을 비출 때마다 함께 환호했다. 그러나 마치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한 사람처럼 6만여 팬들이 순식간에 매정하게 등을 돌렸다. 도대체, 이날 경기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날 경기에서 두 팀은 90분간 서로 3골씩을 주고 받으며 3-3으로 비겼다. 애초부터 친선전일 뿐인 이 경기에서 정규시즌과 같은 끈끈한 긴장감을 기대했던 팬들은 거의 없었다. 유벤투스는 한창 프리시즌을 치르고 있는 미완성의 팀이었고, 팀 K리그도 리그 최고 선수들로 구성돼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직적 움직임은 기대할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팬들은 오직 호날두를 비롯한 스타들과 K리그 선수들이 멋진 골을 터뜨리는 즐거운 축제를 기대하고 경기장을 찾았지만 그 기대는 완벽히 배신당했다. 이날 경기는 골은 터졌지만 축제다운 즐거움도 찾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호날두를 찾을 수 없었다. 당초 45분 이상 출전할 것으로 알려졌던 그는 결국 이날 경기에서 단 1분도 뛰지 않았다.
경기 시작부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킥오프 예정 시간인 8시가 됐음에도 경기장에 유벤투스 선수들이 도착조차 하지 않았던 것. 당초부터 무리하다고 지적됐던 일정이 마침 불어닥친 악천후로 완전히 틀어졌다. 중국에서 출국하는 항공편이 2시간여 지연되며 입국 일정까지 한없이 늦어진 가운데, 친선전 주최측은 경기전 예정됐던 팬사인회까지 강행했고, 금요일의 교통체증까지 맞물리며 초유의 지각사태가 발생했다. 관중들은 킥오프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텅 빈 경기장을 바라보며 유벤투스 선수들을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결국, 유벤투스 선수들은 8시5분여가 돼서야 경기장에 도착해 준비를 시작했고, 9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가까스로 경기가 시작됐다. 호날두는 선발에서 제외돼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다행히도 전반 45분동안 열전이 이어지며 격앙됐던 경기장 분위기는 금세 열광으로 바뀌었다. 팀 K리그의 오스마르(FC서울)가 전반 4분만에 곤잘로 이과인에게서 공을 탈취한 뒤 기습적인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내자 유벤투스가 이어진 공격에서 세계적 선수들다운 패스워크 이후 사이몬 무라토레의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들었다. 이후 이동국과 다니엘레 루가니 등이 결정적 슈팅을 만들며 공방을 주고 받은 뒤, 전반 종료 1분전 팀 K리그가 추가골을 만들었다. 미드필더 김보경(울산)이 오른쪽 측면에서 내준 볼을 세징야(대구)가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유벤투스의 골망을 꿰뚫었다. 세징야는 득점을 터뜨린 뒤 호날두 특유의 세리머니를 펼쳐 관중들을 즐겁게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관중들은 벤치에 앉아있는 호날두가 전광판에 비칠 때마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보여주며 그의 후반전 출전을 고대했다.
그러나, 이 기대는 완벽히 배신당했다. 후반전이 시작됐음에도 호날두가 그대로 벤치를 지킨 것. 이때부터 관중석은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이는 후반 5분 팀K리그 타가트(수원)의 추가골이 터졌음에도 진정되지 않았다. 급기야 관중들이 벤치만 지키고 있는 호날두에게 야유를 보내는 상황까지 이어졌고, 덩달아 전반 좋았던 양팀 선수들의 집중력도 흔들렸다. 이후 유벤투스가 신예 선수들의 활약 속에 2골을 연달아 터뜨리며 3-3 동점이 됐지만 경기를 즐기는 팬들은 거의 없었다. 경기 막판 관중들이 호날두에 대한 배신감으로 그의 라이벌인 리오넬 메시의 이름까지 연호하는 상황까지 이어진 끝에 결국 경기는 씁쓸함만 남기고 끝났다.
여기에 경기 뒤 호날두가 이미 경기 하루전 출장을 하지 않기로 했던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마우리시오 사리 유벤투스 감독은 “지난주 힘든 프리시즌 일정을 소화한 호날두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하루 전 이미 출장을 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호날두를 보기 위해 비싼 티켓 가격을 감수하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영문도 모른 채 많은 돈과 시간을 허공에 날리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많은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모았던 호날두의 45분 의무 출장 계약의 진위 여부가 또 다른 논란거리로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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