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석규와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는 한국의 멜로영화 하면 떠오르는 몇 안 되는 작품이다.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2013년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 100선에 선정됐다.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첫손에 꼽은 인생 영화는 다름 아닌 ‘8월의 크리스마스’다.
서울 롯데갤러리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의 ‘100 Movies 100 Artist’전에 참여한 작가 100명 중 가장 많은 8명이 ‘8월의 크리스마스’를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롯데갤러리는 올해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해 7월 한 달간 전국의 10개점에서 영화와 미술을 주제로 통합전 ‘BEHIND THE SCENES’를 연다.
◆2·3위는 ‘지구를 지켜라!’, ‘올드보이’
‘100 Movies 100 Artist’전은 작가들의 인생 영화가 무엇인지, 어떤 영화를 소재로 한 작품인지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작가들의 개성도 돋보인다. 아크릴, 유화 등 작업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전시 작품들은 대부분 신작. 정고은 롯데갤러리 큐레이터는 “작가들에게 영화 포스터 크기와 비슷한 가로 50㎝, 세로 72.5㎝의 캔버스만 제공했다”며 “한국영화 100선을 기준으로 하되 제한을 두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선택한 김건일 작가는 “100번 이상 본 영화”라며 “기억과 그리움의 소중함을 감사하게 된다. 앞으로 남겨질 기억의 모습을 그리며 지금을 반성해 본다”고 말한다. 영화 속 배경인 초원사진관을 캔버스에 담은 서지형 작가는 “일상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와 그 이야기 속에 내가 있는 듯한 자연스러운 연출이 너무 좋았다”고 회상한다.

작가들의 인생 영화 2위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7명). 3위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6명)다. 감독 기준으로는 ‘기생충’을 비롯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꼽은 작가가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1984) 등 1980년대 이전 영화들도 눈에 띈다.

사진작가 구본창과 오형근, 홍장현은 영화 포스터 사진 작품을 선보인다. 양해남 등 영화 자료 수집가 3명의 각종 소장품도 볼 수 있다.

◆영화와 미술의 만남…지점별 전시 ‘다채’
롯데갤러리 영등포점은 공상과학(SF) 장르의 독일 무성영화 ‘메트로폴리스’(1927)를 모티프로 작가 6명의 다양한 작품을 한데 모았다. 프리츠 랑(1890∼1976) 감독은 시대를 앞서간 영화미술로 기계문명의 디스토피아를 그려 냈다. 2001년 원본 필름 복원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영화사 걸작이다.
전시장 한쪽 스크린에서는 영화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영화 속 미래 도시와 지하 세계 사진들도 함께 전시돼 영화와 미술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
롯데갤러리 광주점은 국내 유일의 단관 극장인 충장로의 광주극장을 소재로 삼았다. 광주와 전남 일대의 작가 9명이 저마다 드로잉, 사진 등을 통해 광주극장을 기록했다. 이 극장은 올해 10월1일 개관 84주년을 맞는다.
2003년까지 광주극장의 간판 화가로 활동한 박태규 화백의 작품들도 소개한다. 광주극장은 지금도 1년에 한 번 정도 손간판을 만든다.
총 132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통합전은 오는 28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는 무료.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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