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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해도 다시 학원으로… ‘스펙의 굴레’ [연중기획 - 청년,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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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29 20:00:00 수정 : 2019-06-29 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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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 이직 등 이유로 준비 / 구직자 탈락 원인 1순위 꼽아 / 탈스펙 추세에도 부담감 여전

전자공학을 전공한 취업준비생 김모(27)씨. 김씨는 전공과 무관하게 한국사능력시험 1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또 토익이 800점대 후반인데, 최근 토익스피킹 준비를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스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불안감 탓이다. 그는 “주변에서 한국사자격증 같은 스펙은 필요없지 않으냐고 말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면서도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싶어 딴 것”이라고 말했다.

이력서에 뭐라도 한 줄 더 쓰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취업준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자신의 나이와 스펙을 적고 평가해달라는 글이 하루에 십수개씩 올라오곤 한다.

최근 블라인드 채용 등 ‘탈스펙 채용’이 확산되고 있지만 구직자들은 스펙에 대해 여전히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들도 이직 등의 이유로 연간 2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스펙 향상에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반기 공채 ‘스펙 미달’로 취업 힘들어”

올 상반기 구직자들은 평균 13차례 입사 지원서를 냈지만 3명 중 1명 이상이 서류전형에서조차 한 차례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구직자 1721명을 대상으로 상반기 취업 도전 경험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이들의 입사 지원 횟수는 평균 12.6회였다. 이들의 서류전형 합격 횟수는 평균 2.0회였다. 모두 불합격했다는 답변이 34.1%로 가장 많았고 1회 합격(20.3%), 2회 합격(15.5%) 등의 순이었다. 서류전형 불합격을 경험한 구직자들은 탈락 원인으로 ‘학벌, 학점, 어학 점수 등 스펙 부족’(44.1%·복수응답 가능)을 가장 많이 꼽았다. 올 하반기 취업 전략으로는 ‘스펙 강화’라는 응답이 24.0%로 가장 많았고, 이밖에 인턴 등 실무경험 쌓기(15.3%), 자기소개서 작성 대비(12.1%), 취업 눈높이 낮추기(11.3%) 등을 꼽았다.

 

체감 취업경기도 얼어붙은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올 상반기 구직활동을 한 구직자, 아르바이트생, 대학생 등 4579명을 대상으로 취업경기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7.3%가 ‘더 악화했다’고 응답했고 30.4%는 ‘예전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구직난이 완화됐다’는 답변은 2.3%에 그쳤다.

 

사람인이 올 상반기 공채 시즌이 시작할 때쯤 구직자 259명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취업에 자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에서 응답자의 62.9%가 ‘자신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58.4%) 대비 4.5%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성별로는 여성이 69.5%로 남성(58.6%)보다 조금 높았다.

 

취업에 자신이 없는 이유 1위로는 절반이 넘는 50.9%(복수응답 가능)가 ‘스펙을 잘 갖추지 못해서’를 꼽았다. 스펙에 대한 부담이 자신감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구직자들이 취업에 대해 갖는 자신감 점수는 100점 만점 기준 평균 52.3점에 불과했다. 스펙 다음으로 구직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은 계속 취업에 실패하고 있어서(43.6%)였다. 대내외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서(33.1%), 직무 관련 경험이 별로 없어서(31.3%), 학벌이 좋지 않아서(31.3%) 등의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구직자들은 또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취업이 안 될 것이라는 불안감(32.4%)을 첫 번째로 들었다. 이 밖에 생활비 및 준비 비용의 부족(25.9%), 자신감 결여 및 자존감 하락(16.6%),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스펙의 상향 평준화(8.5%) 등을 언급했다.

 

이처럼 스펙 열풍은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취업시장에서 가장 비정상적 현상으로 꼽은 것 역시 ‘과도한 스펙 쌓기’로 조사됐다. 사람인이 성인남녀 968명을 대상으로 현재 취업시장에서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조사한 결과 과도한 스펙 쌓기를 꼽은 응답이 52.7%(복수응답 가능)로 가장 많았다. 실무와 관련 없는 스펙을 무작정 쌓는 것을 불필요하게 본 것이다. 이어 공무원 시험 올인(40.4%), 대기업만 바라보며 장기 구직(36.4%), 고학력 구직자 증가(31%), 자소서 대필·‘자소설’ 작성(24.8%), 취업 포기·구직 단념자 증가(22.8%) 등의 의견이 나왔다.

◆취업 성공해도… 스펙쌓기는 계속

 

사람인이 직장인 474명을 대상으로 ‘직장 입사 후 스펙 준비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2.8%가 ‘직장인이 돼서도 스펙을 쌓고 있다’고 답했다. 취업을 위해 준비한 스펙이 취업 이후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가장 많이 준비하는 스펙(복수응답)으로는 자격증(58.3%)이 꼽혔고, 다음으로 업무 관련 직무교육 이수(43.8%), 외국어 회화 능력(35.9%), 공인 어학 점수 취득(25.8%), PPT·엑셀 등 보고서 스킬(25.8%), 학사·석사 등 학위 취득(MBA 포함)(11.3%) 등이 있었다. 직장인들은 이를 위해 한 달 평균 18만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연간으로 보면 216만원을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스펙을 쌓은 가장 큰 이유(복수응답)는 이직을 위해서(61.2%)가 가장 많았다. 전문성 확보를 위해(57.4%), 고용 불안 등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44.3%), 연봉 인상·승진 시 필요해서(40.9%) 등이 뒤를 이었다.

 

관련 서적을 통해 독학(57.1%)을 한다는 직장인이 가장 많았다. 이밖에 동영상 등 온라인 교육(55.4%), 학원·강습 등 오프라인 교육(44.6%), 동호회 등 스터디(11.6%), 사내 교육(10.7%), 대학원 진학(7%) 등의 응답이 있었다. 직장인들은 주로 퇴근 후 시간을 이용(71%, 복수응답)해 필요한 스펙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주말·휴일(48.4%), 자투리 시간(28.4%), 출퇴근길(10.7%) 등을 활용해 자기계발에 나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은 스펙쌓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입사 후 쌓은 스펙은 좋은 조건으로의 이직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채용 평가 때 한자·한국사 자격증 가장 불필요”

 

구직자들이 여전히 ‘스펙’을 손에서 못 놓는 것과 달리 기업들은 스펙 대신 직무 역량을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국정과제였던 ‘블라인드 채용’에 이어 기업 현장에서는 정기 공채 폐지 후 상시 채용 등 인재 채용 형태를 바꿔나가고 있다.

 

최근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38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의 73.2%가 입사지원서상에 불필요한 스펙이 포함돼 있다고 답했다. 응답 기업들은 채용 평가 시 고려하지 않는 스펙으로 ‘한자·한국사 자격증’(48.2%, 복수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극기·이색 경험(46.5%), 동아리 활동 경험(26.6%), 석·박사 학위(25.5%), 봉사활동 경험(25.2%), 해외 유학·연수 경험(22.7%) 등의 순서였다.

 

기업들이 불필요한 스펙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전체의 64.2%가 ‘실제 업무에 필요 없어서’라고 답했다. 직무와의 연관성 부족(60.6%), 변별력이 없어서(34.8%) 등의 응답도 실무와 무관하다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원자가 갖춰야 할 스펙으로는 전공(52.4%), 인턴 경험(39.9%), 아르바이트 경험(29.6%), 학점(26.8%) 등이 꼽혀 직무 연관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어차피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면 처음부터 일을 가르쳐야 한다”면서도 “아예 0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업무와 관계된 경험을 한 신입사원이 가르치기 쉽다”고 말했다.

 

구직자, 직장인들이 직접 신입사원 채용 면접 때 받은 질문도 ‘직무 이해도’에 관련된 것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1년 내 채용면접 참여 경험이 있는 구직자, 직장인 21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직무 이해도(54.5%) 관련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고 다음으로 직무경력·경험(48.3%)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사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마찬가지다. 양쪽 모두 가장 많이 받은 질문 두 가지가 직무 이해도와 직무경력·경험이었다. 전문가들은 채용시장 판도가 바뀐 만큼 과거 통용되던 스펙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람인 임민욱 팀장은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다양한 스펙을 쌓는 데 에너지를 분산하기보다는 지원하는 포지션에서 자신의 강점으로 보여줄 수 있는 스펙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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