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베이터는 현대사회의 ‘마지막 남은 공적 공간’이다. 고층빌딩 속 사무실과 아파트가 벽과 칸막이로 구획된 결과 공적 공간은 협소하고, 사적 공간이 오히려 넓게 차지하고 있다. 같은 회사 동료들이라도 부서가 다르면 소통할 장소가 거의 없고, 아파트 앞집 주민과도 철문으로 차단된 삶을 꾸려나간다. 그 결과 일터나 삶터에서 ‘사회적 연대’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처럼 폐쇄적 공간구조에서 ‘개인들의 우연한 맞닥뜨림’이 가능한 공간은 매우 소중하다. 고층 건물 속 엘리베이터는 ‘상하로 움직이는 지하철 전동차’라 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앞 공간’은 역사(驛舍)이고, 그 내부는 ‘전동차 안’이다. 이 두 곳은 폐쇄적 구조를 가진 일터와 삶터의 구성원들이 상대방을 발견하고 소통하여 ‘사회적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다.

엘리베이터에 혼자 탔을 때, 그 내부는 개인의 ‘임시 사적 공간’이다. 사람들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거나,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는 등 개인적 행동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 사적 공간’은 그곳에 ‘낯선 사람’이 합류하는 순간 ‘공적 공간’으로 돌변한다. 엘리베이터는 ‘낯선 사람’과 밀착 거리에서 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어색하게 공유하는 특이한 장소다.
한국인과 미국인·유럽인은 엘리베이터 동승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한국인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시선을 제3의 장소로 돌리고 무표정하게 있거나,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 LED 모니터에 적힌 정보와 광고를 보며, 이따금 전망용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는 외부 전경(全景)을 감상한다.
그러나 어린이나 초·중·고등학생들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보통 아이들이 먼저 인사말을 하고, 어른들은 환하게 웃으며 답인사를 한다.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공동체 구성원끼리는 물론이고, ‘낯선 사람’과도 인사말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하고, 엘리베이터와 같은 특정 장소에서는 ‘들어서는 사람’이 ‘먼저 와 있는 사람’에게 인사하라고 가르친다. 그렇지만 아이들도 성인이 되면 여느 한국인과 똑같이 행동한다. ‘낯선 사람’을 ‘환대’하라는 규범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미국인·유럽인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인사를 교환한다. 미국과 유럽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상대방에게 인사말을 건넸을 때, 그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므로, 누구나 간단하게나마 답인사를 한다. 간단한 인사말만 주고받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날씨와 스포츠 이야기 등을 나누기도 한다.
사회학자들은 개인이 ‘낯선 사람’과 주고받는 인사말이 ‘상대방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알리고 상대방으로부터 답인사를 받아 ‘안전’을 확인하는 ‘사회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한국인들이 ‘낯선 사람’과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모래알 같은 개인들로 구성된 ‘파편사회’임을 역설한다. ‘마지막 남은 공적 공간’에서 낯선 개인들이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새로운 연대 구축’의 첫걸음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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