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금주의 역사 - 6월3∼9일] 대서양을 쪼개서 나눠준 교황

관련이슈 금주의 역사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9-06-02 20:25:36 수정 : 2019-06-03 08:11:33

인쇄 메일 url 공유 - +

1494년 6월7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체결한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두 나라가 신세계를 나눠 갖기 위한 것이지만 얼핏 창세기의 이야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 2년 뒤에 이 조약을 주관한 알렉산더 6세 교황이 지도상에서 대서양을 수직으로 갈라서 동쪽은 포르투갈이, 서쪽은 스페인이 지배한다고 한 것이 그렇다. 마치 지구라는 빵이나 과일을 나눠 주는 듯하다. 당시는 미주 대륙은 물론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지역도 지도상에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았으니 눈이 먼 재부(財富)의 신 플루토스가 부를 나눠주는 그리스 신화를 떠올릴 수도 있다. 로마 교황청은 1456년에도 비슷한 선심을 쓴 적이 있다. 아프리카 개척에 앞장선 포르투갈에 ‘기니와 카보 보자도르 남쪽에서 앞으로 발견되는 모든 땅’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칙서를 내린 것이다.

당시 기니와 카보 보자도르는 유럽인에게 알려진 가장 먼 남쪽 땅이었다. 그 뒤 콜럼버스가 미주 대륙을 발견하자 스페인은 1493년 스페인 출신의 교황인 알렉산더 6세의 명의를 내세워 서경 38도를 기준선으로 서쪽의 모든 땅을 스페인이 받았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이미 남미에 발을 디딘 포르투갈이 반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페인으로서는 내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스페인은 자기네 나라에 침략했던 북아프리카의 무어족과 싸워서 내쫓은 것이 겨우 1년 전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는 그 경도를 43도 37분으로 옮기기로 타협한 것이다. 따라서 남미 대륙의 절반에 가까운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차지가 됐다. 로마 교황의 권위가 새삼 돋보인 이 조약은 아직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이기도 했지만 당시 유럽의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의 싸움에 여념이 없었고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 전쟁이 끝났으나 그 후유증이 심각해 대륙문제에 전념해야 했다. 훗날의 강력한 해양세력인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양평(언론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조이 '사랑스러운 볼콕'
  • 조이 '사랑스러운 볼콕'
  •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미연 '깜찍한 볼하트'
  •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