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라는 어원은 참 매력 있다. 구울 ‘소’(?), 술 ‘주’(酒). 바로 구워낸 술이다. 발효주에 열을 가하면 끓는점이 낮은 알코올(78도 정도)이 먼저 올라와서 물과 분리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발효주의 영혼, 즉 알코올만 뽑았다고 해서 ‘스피릿’(Spirit)이라고 불렸다.
‘증류기술소사’(A Short History of the Art of Distillation)라는 역사서에는 기원전 1세기부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증류를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술은 중동의 연금술로 이어진다. 이후 이슬람의 증류주 기술은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몽골의 점령으로 중국·한국으로 전파됐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의 뿌리가 된다. 프랑스에서는 ‘코냑’, 동유럽에는 ‘보드카’란 꽃으로 피어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소주’라는 문화가 생기게 된다.

유럽의 모든 증류주는 어원을 같이한다. 북유럽의 ‘아쿠아비트’(Aquavit), 위스키의 어원인 ‘우스개 바흐’(Uisce Beatha), 프랑스의 ‘오 드 비’(Eau-de-Vie), 동유럽(폴란드 및 러시아가 원조)의 ‘보드카’(‘지즈 데냐 보다’·Жизденя вода) 등 모두 생명의 물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증류주가 중세시대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흑사병)의 ‘치료제’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기록에 의한 최초의 증류주(정확하게는 위스키) 허가는 의사에게 주어진다. 연금술사 및 수도사들이 만들다가 드디어 전문영역인 의사인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술을 빚던 전문기관이 있었다. 바로 궁궐의 건강을 책임지는 내국, 내의원이다. 조선에서도 의료기관에서 술을 빚었던 것이다. 한국의 술이 ‘약주’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위스키, 보드카 등 유럽의 증류주와 한국의 약주는 그 어원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1579년 의사 조합에게 제조 독점권을 준 이후로 전분질의 곡물을 사용, 증류주(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널리 퍼진다. 하지만 이 증류주 제조가 너무 많은 곡물을 사용한다고 판단, 기근을 일으킬 수 있다며 금주령을 내린다. 하지만 귀족 및 신사 계급 이상은 만들 수 있고, 또 마실 수 있었다. 세종실록에도 금주령 관련해 유사한 내용이 있다. 탁주를 마신 서민은 잡히고, 청주를 마신 양반은 잡히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결국 술은 시대를 반영하며, 사회탐구의 영역으로도 깊이 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서양의 고급술이라도 우리 뿌리가 같다는 것. 그들도 이슬람의 연금술에서 시작했고, 우리와 같이 의사들이 만들었으며, 금주령이 있었고, 가진 자들을 위한 법령 역시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것이 멋져 보이며 우리 것은 작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 본질과 뿌리는 제쳐두고 말이다. 한국의 전통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사회학과 졸업. 현재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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