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22일 한반도 긴장 완화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돌연 철수하면서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미국이 대북제재의 고삐를 옥죄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를 볼모로 삼아 우리 정부와 미국을 동시에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처럼 남북관계에 다시 빨간불이 켜지면서 정부가 추진해온 각종 남북 교류·협력 사업들도 당분간 ‘올스톱’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개설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남북 간 첫 24시간·365일 소통채널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그만큼 당국자들에게 준 충격파가 작지 않다.
이처럼 북측의 급작스러운 철수 결정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미국의 대북제재 강화 기류 속에 우리 정부가 북·미 협상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하는 일종의 ‘몽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북·미 대화의 교착이 길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핵·미사일 실험 재개 카드를 꺼낼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한·미 정부의 대응, 남측 여론의 향배 등을 ‘간 보기’ 하는 차원의 상징적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은 그동안 핵문제 협상이 틀어질 때마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희생시켜왔다”며 “북한의 이번 결정은 미국을 향해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는 경고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우선 우리 정부와 미국의 반응을 보며 다음 스텝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상황에 따라 점점 긴장의 강도를 높여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이 고수하는 ‘최대 압박’ 기조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다음달 11일 최고인민회의나 같은 달 15일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을 전후해 다른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향후 조치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성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은 최근 주요 국가들의 공관장을 평양에 불러들이며 비핵화 협상 전략과 대외정책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며 “조만간 북한이 김 위원장이나 정부 명의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강경한 성명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 부상이 지난 15일 평양 외신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실험 중단)을 유지할지 안 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해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과거에도 북한은 북·미 관계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 등의 도발을 해 왔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체결 이후 이듬해 7월 북한은 대포동 2호를 발사하면서 합의를 파기했다. 그해 10월엔 1차 핵 실험도 감행했다. 2012년 2·29 합의도 한 달여 만에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함에 따라 수포로 돌아갔다.
남북관계에도 파장이 불가피해졌다. 정부가 추진해온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간 협력 사업들이 차질을 빚게 됐다. 당장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면제 절차가 모두 끝나 다음달 열릴 것으로 기대됐던 이산가족 화상상봉부터 더 이상의 논의가 불가능해졌다.
다만,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외 판문점이나 동해·서해 군 통신선, 남북 정보라인은 정상 가동 중이어서 아직 대화의 길은 열려 있다. 장철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측 인원이 상부 지시에 따라 철수한 것이기 때문에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채널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남북 간 다른 채널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북한의 이번 조처에 대한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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