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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01X 번호 유지 요구 청원. |
서울에서 환기구 설치 업무를 하는 이모(56)씨는 지난 28년간 011로 시작하는 휴대전화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통신사에서 혜택을 운운하며 010 번호로 이동을 수차례 권유했지만 이씨는 이 번호를 고수했다. 번호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서다. 그는 2000년에 개인사업 중 부도를 맞았다. 그 이후에도 2차례 사업에 실패했는데 그때마다 채권, 채무자 압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씨는 번호를 바꾸지 않아 독촉을 피하지 않았고 점차 빚을 탕감하며 신뢰를 쌓았다. 이씨는 “011 번호에는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그 시절을 기억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며 “할 수만 있다면 돈을 더 주고라도 011번호를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자동차 부품관련 개인회사를 운영하는 김모(56)씨도 24년간 011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그가 그동안 국내외에 돌린 명함은 5만여장이 넘는데 번호를 바꾸면 혹여나 그 인맥을 잃을까봐 걱정된다고 한다. 최근에도 90년대 알고 지내던 페루의 동종업계 종사자에게 전화가 와 연락이 닿았는데 010으로 번호가 바뀌게 되면 10~20년 전에 연락하던 업계 사람들과 연락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업상 규모가 큰 건을 진행할 때가 많은데 그런 것들을 전화번호 때문에 놓칠까 걱정된다”고 011을 유지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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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X 번호 유지를 요구하는 카페 ‘010통합반대본부’ 게시글 캡처 |
카페 운영을 맡고 있는 박상보(38)씨는 통화에서 “지금까지 01X번호 이용자들이 왜 해지를 안 하고 바꾸지 않는 가란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이나 합의 없이 갑자기 (정부가) 서비스 종료한다고 카드를 내밀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6년 92만 9000명(전체 휴대전화 번호의 1.6%)이었던 01X번호 사용자는 2017년 72만 8000명(1.2%), 지난해 52만 8000명(0.9%)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정부는 2G 서비스가 종료되는 2021년 6월까지 010번호통합을 완성할 계획이다. 번호통합이 완료되면 모든 이용자가 전화를 걸 때 식별번호(010)를 누르지 않고 뒤 8자리만 눌러 통화가 가능해지고, 정부는 기존 01X 번호에 사용된 대량의 번호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010통합정책에 따라 이미 번호를 변경한 이용자들에 대한 역차별 문제도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01X 번호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011로 시작하는 번호는 1억여명이 쓸 수 있는데 기존 0.9% 사용자 때문에 못 쓴다는 것은 번호자원의 유한함에 비추어 비효율적”이라며 “01X 번호를 종료하더라도 번호변경을 문자로 안내해주는 등 기존 01X 이용자들의 불편이 없는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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