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수찬의 軍]“사과하라더니”…불신만 키운 日 ‘레이더 공세’

관련이슈 박수찬의 軍 , 디지털기획

입력 : 2019-01-23 09:55:34 수정 : 2019-01-23 09:38:0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일본 해상자위대는 활동반경을 넓히며 주변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게티이미지
일본 방위성이 21일 레이더 전파를 탐지했을 때 기록했다는 전파음을 공개하고, 갈등 해소를 위해 열렸던 한일 실무협의 중단을 선언하면서 일본이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방위성은 이날 해상자위대 P-1 초계기의 저공비행과 광개토대왕함의 사격통제레이더 조사(照射:비춤)에 대한 ‘최종 견해’를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실무협의를 지속해도 진실을 규명하기 어렵다고 판단, 한국과 협의를 계속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방위성의 태도는 기존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서 논쟁을 지속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 여론에 재를 잔뜩 뿌린 뒤 갈등을 봉합하자는 일본의 태도를 신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한일 안보협력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달 20일 우리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동해상에서 일본 해상초계기의 레이더 겨냥 논란과 관련해 초계기 영상을 같은달 28일 공개했다. 사진은 일본 초계기에 잡힌 광개토대왕함의 모습. 일본 방위성 동영상 캡쳐
◆‘군사기밀’에 막힌 공세…봉합은 예견된 수순

일본은 처음부터 ‘한국=가해자’ 프레임을 설정한 채 여론전에 나섰다. 우리측이 지난달 21일 “광개토대왕함은 북한 선박 구조중이었고, 사격통제레이더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탐색레이더(MW-08)는 가동했다”고 일본측에 설명했으나 일본 방위성은 그 다음날 “한국 해군 함정이 사격통제레이더를 P-1 초계기에 조사했다”며 일방적인 주장을 펼쳤다.

방위성은 같은달 28일 당시 영상을 일부 공개하면서 반한(反韓) 여론 부추기기에 앞장섰다. 일본 정치인들도 “한국이 사과해야 한다”면서 광개토대왕함 함장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우리측이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양국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지만 일본의 억지는 계속됐다. 지난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일 실무협의에서 일본은 P-1 초계기가 수신한 일부 정보를 공개하는 대신 광개토대왕함의 레이더 주파수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더 주파수가 노출되면 적군의 공격으로부터 함정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면 레이더 장비를 통째로 교체해야 한다. 군 관계자는 “(레이더 정보는) 고급 군사기밀로 주파수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며 “일본의 요구는 굉장히 무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리측의 문제제기가 지속되자 방위성은 레이더 조사 증거로 접촉음을 공개했지만, 우리 군은 주변 잡음이 전혀 없는 가공된 소리라는 점에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태도 변화는 ‘군사기밀’이라는 덫에 스스로 걸려든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P-1 초계기는 전자 및 잠수함 음파 정보를 수집하는 핵심 정찰자산이다. 광개토대왕함이 P-1 초계기에 레이더를 조사했다는 일본측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시간과 방위, 주파수 특성 등의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관련 장비 오작동 논란으로 번지게 되면 전자장비 운용기록도 노출될 수밖에 없다.
국방부가 4일 한일 레이더 갈등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사진은 조난 선박 구조작전 중인 광개토대왕함 모습(위)이다. 잠시 후 저고도로 진입한 일본 초계기(아래, 노란 원)가 보인다. 국방부 동영상 캡쳐
이 모든 자료는 고도의 군사기밀이다. 지난 14일 실무협의에서 P-1 초계기의 레이더 경보 수신기(RWR) 경보음이 울렸는지를 묻는 우리측 질의에 대해 일본이 답변하지 않은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팩트’를 내놓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론전을 길게 끌 동력은 없었던 셈이다. 자료를 제시한다 해도 오작동 또는 오인 가능성이 제기되면 자위대의 신뢰도 하락을 피할 수 없다.

우리측은 레이더 조사와 P-1 초계기 저공비행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는 입장이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우리 군은 당시 상황과 관련해 승조원 인터뷰와 관련 자료 분석을 실시했다. 또한 P-3C 초계기를 이용, 당시 P-1 초계기 비행경로와 동일하게 비행을 실시하면서 광개토대왕함과 삼봉호의 레이더 운용을 재확인했다. 추적레이더(STIR) 주파수 특성 분석을 통해 일본측의 주장을 반박할 자료도 확보했다.

일본이 추가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을 진상규명의 장으로 끌어내려면 우리측이 일본 주장을 반박할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광개토대왕함의 전자장비 운용기록은 고도의 군사기밀로 공개할 수 없는 자료다. 우리측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일본의 헬기탑재 호위함 휴가가 다른 함정들과 함께 기동하고 있다. 방위성 제공
◆신뢰 깨진 한일…안보협력 지속될까

한일은 레이더 갈등과 관련해 “재발방지를 촉구한다”는 입장과 별도로 양국 간 안보협력을 강조했다.

일본 방위성은 “한일과 한미일 방위협력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비롯해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하다는 인식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우리 국방부도 “한일 안보협력 강화를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레이더 갈등과 P-1 초계기 저공위협 논란으로 양국 군 당국간 신뢰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안보협력이 기존처럼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방위성이 21일 “일본 초계기가 지난해 4월 두 번, 같은해 8월 한 번에 걸쳐 지난달 20일과 유사한 거리에서 한국 함정을 촬영했으나 한국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자 우리 군 관계자는 22일 “일본이 언급한 세 차례 비행 때 거리는 1~2㎞로 지난달 20일의 500m와는 차이가 있다. 일본측 수치는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일본은 우방국으로 신뢰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지난달 20일 저공위협 비행에도 (정부가 일본에) 바로 항의하지 않았다”며 “일본이 일방적으로 추적레이더를 조사했다고 발표하고 동영상도 공개해 신뢰를 깼기 때문에 (저공위협 비행에) 항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방위성과 자위대에서도 “우호국으로서 잘 지낼 수 없다”며 우리측을 불신한다는 언급이 일본 언론에 여과 없이 보도되는 등 한국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반응이 계속 제기됐다.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함포사격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국방 분야의 상호 협력이 이뤄지려면 △공동의 위협이 있거나 △높은 수준의 신뢰 구축이 필수다. 한일은 뿌리깊은 상호 불신 속에서도 북한 핵과 미사일이라는 공동의 위협에 대응하고자 2016년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는 등 협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2차 북미정상회담이 가시화되면서 북한의 위협은 줄어들었다. 반면 양국간의 낮은 신뢰도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여기에 레이더 갈등으로 상호 불신이 커지면서 북한 위협에 기반을 둔 양국 안보협력의 근간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레이더 조사 여부와 저공비행 문제로 갈등을 빚는 나라끼리 안보협력과 정보공유가 가능하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해 오는 8월로 예정된 한일 GSOMIA의 연장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GSOMIA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1월 발효됐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8월 1년 연장됐다. 1년 단위 효력이 끝나기 90일 전 한일 어느 쪽이라도 파기를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 연장된다.

한일 양국 모두 파기에 동의할 가능성은 낮지만, 어느 한 쪽이든 연장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한일 안보협력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될 수 있다. 북한 핵문제를 의식해 양국이 GSOMIA 연장에 동의해도 상호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GSOMIA는 종잇조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레이더 갈등 국면에서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정도로 신뢰구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GSOMIA를 통한 양국 안보협력체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일 안보협력 무용론’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방법이 제시되지 않는 상황에서 안보협력의 틀이 기존처럼 유지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