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에 나오는 시다. 세밑이다. 이맘때면 왠지 허전함이 마음에 가득하다. 누군가는 황혼 빛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그리움과 아쉬움, 슬픔이 짙게 묻어 있다. “미(美)는 우수(憂愁)와 함께한다”는 존 키츠의 말처럼, 우리는 한 해가 가는 12월의 아름다움 속에서 내면으로 젖어드는 숭고한 아픔과 회한으로 얼룩진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우주의 긴 시간에 비춰 볼 때 일 년은 찰나에 불과하고, 세상은 예전처럼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공자가 “춘하추동 사계는 변함없이 운행하고, 만물은 여전히 낳고 자라니, 하늘은 무엇을 말하는가(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라고 설파한 바는 천지의 단절 없는 운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천하의 이치는 끝마치자마자 다시 시작되고 항상 있는 것이며 끝이 없는 것이다(天下之理 終而復始 所以恒而不窮)”라며 “오직 때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바뀌어 나가는 것이 곧 상도(惟隨時變易 乃常道也)”라고 한 ‘근사록’의 가르침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래도, 한 해의 끝을 어떻게 하면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 실천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 상징하듯 팍팍하고 어려운 이웃이 적잖다. 더구나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다. 민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추운 날씨에 연탄 한 장이 아쉽고 따뜻한 밥 한 공기가 얼마나 감사하고 눈물겨운지는 춥고 배고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하기 어렵다.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의 심정과 늙고 병든 데다 외로움까지 겹친 이웃을 외면하지 못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나도 없는 살림이지만 조금 보태는 마음, 빈자일등은 그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되새겨보게 한다. 유종의 미는 새 출발의 거름이 된다.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원장
終而復始 : ‘천하의 이치는 끝마치자마자 다시 시작된다’는 뜻.
終 마칠 종, 而 말 이을 이, 復 다시 부, 始 비로소 시
終 마칠 종, 而 말 이을 이, 復 다시 부, 始 비로소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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