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뒷줄에 앉은 두 중년남성의 말은 어딘가 들떠 있었다.
이들은 “여기가 만종인가?” “원주라고 했으니 근처에 가구단지가 있겠는데” 등의 말을 주고받으며 원래 알고 있던 동네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KTX에 크게 감탄했다. 이들의 대화는 열차가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선으로 접어들 때까지 소풍가던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듯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지난 3월19일 기자는 약 한 달에 걸친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출장을 마치고 강원도 강릉역을 떠나 서울역에 도착하는 강릉선 KTX(당시 경강선 KTX)열차를 탄 바 있다. 산과 들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KTX 산천’열차는 이름값을 제대로 해낸 듯했다.
이날 오전 강릉역을 출발하는 열차에는 기자처럼 패럴림픽 관련 업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이들과 강원도 지역 주민으로 추정되는 이들 그리고 여행용가방을 든 관광객 등 다양한 모습의 승객이 올랐다. ‘KTX 평창’이라는 글자와 대회 마스코트인 수호랑, 반다비 래핑은 좁게는 강원도민 넓게는 한국인의 세계를 향한 자부심을 한껏 드높이는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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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기간 운행된 KTX 열차. 독자 제공 |
하지만 고향과 서울을 잇는 철도를 향한 누군가의 감탄과 자부심은 개통 1년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짓밟혔다.
선로전환기의 고장을 알리는 경보장치가 엉뚱한 곳에 연결되도록 애초 설계가 된 탓에 고장신호를 감지하지 못한 강릉발 서울행 KTX 열차가 탈선했다는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지적이 사고 사흘 만인 11일 나왔다.
조사위에 따르면 선로전환기의 경고 신호 장치를 개봉해 봤을 때 선로전환기와 경고 신호를 연결하는 회선이 잘못 연결된 사실이 파악됐으며, 조사위가 회선 도면을 확인한 결과 설계도부터 잘못된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 9월 기계가 설치되고, 모두의 부푼 기대를 받으며 같은해 12월22일 정식 개통했으니 1년이 다 되도록 승객의 안전을 운에 맡긴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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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강릉역에서 대기 하던 어느 서울행 KTX 열차. 김동환 기자 |
지난 3월22일 코레일은 철도 특별수송 기간이 끝남에 따라 비상대책본부 운영을 마치고 KTX가 평상시 운영으로 들어간다면서 열차를 올림픽 기간 4135회 운행했으며, 선수단뿐만 아니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보좌관과 같은 정상급 외빈 등 106만여명의 관람객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무사히 수송해 대회 성공을 뒷받침했다고 밝혔다.
당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IOC가 평창올림픽의 대표 유산으로 KTX를 꼽을 정도로 이번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가진 세계 최고수준의 고속철도 운영능력을 세계에 알렸다”며 “앞으로도 많은 국민이 경강선 KTX를 타고 빠르고 편안하게 강원도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사고 브리핑에서 기온 급강하에 따른 선로 이상을 사고 원인으로 추정한다는 오 사장의 말이 언급되면서 일각에서는 그의 전문성을 향한 의심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오 사장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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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강원 강릉시 운산동의 강릉선 KTX 열차 탈선사고 현장에서 이틀째 밤샘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
박세증 전국철도노동조합 정책실장은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강릉선 사고를 보면 서울로 가게 만드는 선로전환기에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상 작동하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고, 반대로 강릉기지에 가는 선로전환기는 정상 작동하는데도 오류 신호를 보내게 회로 케이블을 잘못 구성하게 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 정책실장은 이어 “선로 전환기에 결함 이력이 있다거나 문제가 발생했던 곳은 빠르게 점검하고 전체 구간에 대해서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선로 전체 회로를 구성하고 오작동을 알려주는 시스템이 한번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한편 동계올림픽 기간 KTX열차를 타고 강원도에 다녀왔다고 밝힌 A씨는 세계일보에 “대회 일정에 맞추느라 너무 성급하게 개통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수도 있는 이번 같은 사고가 다시는 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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