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김모(30)씨에게 11월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인들의 잇단 결혼으로 호주머니 사정이 말이 아니어서다. 지난 10일 하루만 결혼식이 3번 있었는데 아직도 하나가 더 남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빠질까 생각도 해봤지만 차마 입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그는 “축의금도 올라 10만원이 기본이 된 지 오래”라며 “밥 먹을 돈도 없는 터라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결혼식을 올리는 입장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내년 2월 결혼 예정인 직장인 이모(32)씨는 요즘 청첩장을 지인들에게 전달하며 고민이 깊다. 맨입으로 결혼식에 와달라고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이씨가 예비 신부와 청첩장 모임에 쓰기로 한 예산은 200만원 안팎. 결혼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것도 적은 액수라고 한다. 그는 “(청첩장 모임에) 돈을 좀 쓰더라도 크게 대접하는 게 심적으로 낫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결혼 성수기로 불리는 가을·겨울철이 오면서 청첩장이 두려운 청년이 많다. ‘축의금 인플레이션’에 청첩장을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부담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한때 이른바 ‘작은 결혼식’이 대안으로 제시됐으나 금세 얘기가 시들해졌다. 서로의 관계를 축의금으로 확인하는 정서가 없어지지 않는 한 ‘악순환’의 연속일 것이란 냉소적 분석마저 나온다.

어려워진 경기에 청첩장이 일종의 ‘고지서’처럼 느껴져 떨떠름하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남녀 438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3%가 청첩장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축하할 일이 분명하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한 포털 질문 게시판만 보더라도 ‘이런 관계인데 축의금은 얼마를 내야 하느냐’, ‘불참을 위해 어떤 핑계를 대면 좋겠느냐’ 등 질문이 대거 올라와 있다.

윤상철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우리나라 중산층의 경우 상호 부조금을 통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며 “청년들이 작은 결혼식을 고민하더라도 ‘준 만큼 받아야 한다’는 심리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작은 결혼식’에 관한 좋은 선례가 쌓이기 전까지는 쉽게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삽화=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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