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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불편한 텐트생활에… 이재민들 “이게 사는 건지” 한숨

입력 : 2018-11-11 18:55:38 수정 : 2018-11-11 20: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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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1년] 〈상〉 아물지 않는 상처… 최대 피해지역 흥해읍 가보니 “이게 어디 사람이 사는 꼴입니까?”

지난해 11월15일 포항지진 발생 이후 1년이 되어가는 10일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지진 이재민 조연옥(61·여)씨는 “여기도 내 집이 아니고 제가 살았던 아파트도 내 집이 아닙니다”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는 “마치 떠돌이 유랑생활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진 발생 1년을 맞아 다시 찾아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모습. 지진으로 아파트가 기운 데다 곳곳이 파손돼 있어 주민을 이주시키고 입구를 폐쇄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장영태 기자
조씨는 지난해 11월15일 평소처럼 아파트를 나와 흥해공고 뒷산을 산책하고 있는데 갑자기 산이 심하게 울려 순간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던 벤치를 붙잡고 간신히 버텼다. 지진임을 금방 알게 된 그녀는 몇 군데 전화를 했으나 불통이었다.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공황상태였다”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조씨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살던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미장관맨션으로 돌아와 보니 집은 엉망인 상태였다. 벽은 금이 가고 유리창은 깨져 있고 물건들은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등 전쟁터 같았다. 비가 오면 새는 데다 언제 지진이 다시 발생할지 몰라 불안해 어쩔 수 없이 옷만 간신히 챙겨 나왔다. 이재민이 대피해 있는 흥해실내체육관으로 거처를 옮겨 좁고 불편한 텐트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조씨는 지금도 지진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 대피소에서 운영되던 빨래방이 철거돼 조씨는 세탁을 하려면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로 돌아가 빨래를 해온다. 남편과 함께 텐트에 누우면 다리가 텐트 밖으로 나올 정도로 비좁아 생활하기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이재민 임시구호소. 지진이 발생한 지 1년이 다 돼 가고 곧 추위가 닥치는데도 여전히 91가구 주민 208명이 체육관에 임시 거주하며 불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장영태 기자
지진 대피소로 지정된 뒤 흥해실내체육관에 설치된 6.6㎡(2평) 크기의 텐트 250여동은 그대로 놓여 있다. 지진 직후에는 800여명이 이곳에 머물며 숙식을 해결했다. 그동안 이재민은 하나둘 정부와 포항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마련한 보금자리로 이사해 떠났다. 일부 주민은 자신 집을 수리해 돌아갔다. 흥해실내체육관에 등록된 이재민은 91가구 208명이다. 이 중 82가구, 195명이 흥해 한미장관맨션 주민이다.

임시구호소 운영을 놓고 포항시와 이재민 간 감정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지진이 일어난 지 1년이 되는 만큼 포항시는 애초 임시구호소를 철거할 예정이었다. 흥해실내체육관은 본진과 여진으로 외벽에 틈이 벌어졌고 내부 천장 구조물 일부가 휘었다. 이 때문에 체육관을 보수해야 하지만 이재민이 있어서 손을 대기 어렵다. 임시로 보강 철재로 덧대어놓았을 뿐이다.

흥해읍내 곳곳에는 한미장관맨션비상대책위원회가 붙여 놓은 ‘포항시는 지진 이재민을 더 이상 기만하지 마라’, ‘엉터리 정밀안전점검 이재민은 두 번 운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지진으로 아파트 4개 동이 상당한 피해를 봤는데도 포항시 정밀안전점검에서 사용 가능 판정을 받아 이주대상에서 빠졌다”며 이주대상에 포함해줄 것을 요구했다.

포항시는 피해 건축물 조사에서 한미장관맨션은 C등급으로 구조체에는 문제가 없고 보수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자체 선정한 전문업체의 구조 안전성 검토에서 E등급이나 D등급을 받았다며 맞섰다. 허성두 포항시 지진대책국장은 “주민설명회와 간담회 등 주민과 지속적인 대화로 용역 결과를 수용토록 설득 중”이라며 “공동주택지원사업으로 공용부분을 보수하는 등 원만한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지진 이재민 임시 주거시설인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에 지진 이재민 29가구가 입주해 있다.
포항시 제공
대체 주거지를 마련한 주민이라고 해서 편안한 것도 아니다. 임대주택에 들어간 지진 피해 주민은 최대 2년까지 살 수 있다. 그 안에 새집을 마련해야 하지만 재건축은 대부분 지지부진하다. 흥해초등학교 인근에는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주택인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가 있다. 지진으로 집이 부서져 전파 판정을 받은 주민들이 지난 2월부터 산다. 흥해읍 대성아파트나 경림뉴소망타운 주민이 많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68·여)씨는 “2년 내 새로 집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보일러가 아니라 전기 패널로 난방하다 보니 전기를 많이 쓰는데 지금까지는 전기요금이 무료였지만 앞으로는 돈을 내야 한다고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11·15 강진에 이어 올해 2월11일 규모 4.6 여진으로 발생한 포항지역의 재산피해는 총 845억7500여만원에 이른다. 전파·반파 주택은 956건, 소파 판정이 난 주택은 무려 5만4139건이다. 학교나 공공건물, 도로 등 공공시설 피해도 421건이다. 당시 17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 흥해실내체육관을 비롯해 기쁨의 교회, 항도초, 대도중 등 11개 구호소에 분산, 수용됐다.

지진 진앙인 포항 흥해읍의 피해는 더욱 컸다. 지진 발생 전 흥해읍 인구는 3만4600여명이었으나 지난 1년 동안 1000여명이 흥해를 떠났다. 특히 올 연말 대규모 입주예정인 초곡단지에는 아파트 입주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아파트 매물이 쏟아져 유령 아파트 단지가 될 것으로 포항시는 우려하고 있다.

지진은 물적 피해뿐 아니라 포항 시민들의 마음에도 큰 상처를 냈다. 지진 공포, 이른바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다. 지난 1년 동안 포항시 북구보건소가 운영하는 재난심리지원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은 사람은 9800명에 이른다. 지진 발생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재민들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흥해읍 주민 김성두(67)씨는 “정부 차원에서 재산피해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장영태 기자 3678jy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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