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3년 9월의 기록. “말갈이 북쪽 경계를 침범하자 왕은 강병을 거느리고 나가 싸워 대파했다. 살아 돌아간 적은 열에 한둘이었다.”
이때의 말갈은 부여의 예(濊)족을 이르는 말이다. 이후 말갈은 물론 고구려, 신라와 전쟁을 치르며 백제의 역사를 이어간다. ‘백제 갑옷’은 그런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투쟁의 산물이다. 금휴개(金?鎧). 금칠을 한 백제 최고의 갑옷이다. 고구려 보장왕 4년, 645년 고구려 안시성을 공격한 당 태종 이세민도 백제 금휴개를 입었다.
‘삼국사기’에 남은 기록. “백제가 금휴개를 바치고, 현금(玄金·철)으로 문개(文鎧·무늬 있는 갑옷)를 만들어 사졸들이 입고 다녔다. 당주(唐主·이세민)가 적(勣·이세적)을 만날 때 갑옷의 광채가 빛났다.”
백제 갑옷 제조기술은 대단했다. ‘문개’가 백제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혹시 백제 것이라면 갑옷에서 백제의 힘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7년 전 공주 공산성에서 발굴된 백제 명광개(明光鎧). 황색칠을 한 비늘 갑옷이다.
고구려에도 명광개가 있었다. 당 태종은 안시성 공격 때 고구려 북부누살 고연수와 남부누살 고혜진의 구원군을 무너뜨린 후 1만벌의 명광개를 노획했다고 한다. 황해도 안악고분 3호분 벽화에 남은 고구려 기병의 모습. 갑옷으로 기병의 온몸과 말을 에워쌌다. 명광개의 또 다른 형태일까.
신라 갑옷의 원형이 복원됐다. 신라 김유신 집터의 우물이라는 경주 재매정에서 출토된 갑옷이다. 철편 700여개로 이루어진 이 갑옷은 상반신과 어깨만 가린다. 보병 갑옷이다. 고구려 기병 갑옷과는 다르다.
갑옷으로 무장한 고대 국가들. 지금은 무엇을 갑옷으로 삼을까. 핵폭탄? 북한은 그렇다. 우리의 갑옷은 무엇일까. 혹시 낡은 갑옷마저 벗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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