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도 佛 시대정신 되새겨야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1950∼6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영화 풍조로서 ‘새로운 물결’(new wave)을 뜻한다. 영화사에선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 구실을 한다.
프랑수아 트뤼포, 장뤼크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루이 말, 알랭 레네, 에리크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 젊은 감독들은 당시 침체에 허덕이는 프랑스 기성 영화계에 대한 거침없는 비평과 함께 신선한 발상과 표현 양식를 제시하며 새로운 변화를 주도했다. 이들은 프랑스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에 글을 쓰며 경력을 쌓았는데, 특히 발행인이자 비평가인 앙드레 바쟁의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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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
장뤼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장폴 벨몽도는 느닷없이 카메라를 향해 대사를 친다. 이는 몰입해서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한 편의 극영화일 뿐임을 일깨우는 ‘소격효과(Verfremdungs effekt·낯설게 하기 효과)’를 실험한 장면으로 꼽힌다. 토마스 엘세서는 영화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이런 영화에서 관객은 ‘보이지 않는 증인’이거나 ‘가상적 참여자’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할리우드 서사의 불문율을 깨뜨리기도 했다. 할리우드 연속 편집의 원칙을 무시한 즉흥적인 편집이 그 사례다. 인과론적 연결성이 상당히 느슨한 내러티브를 취한다. 명쾌하게 짜여진 드라마보다 우연한 사건 또는 의도적으로 계획하지 않은 줄거리의 열린 형식을 선호했다. 때로는 ‘점프컷(Jump cut·장면 급전환)’을 이용한 비약적인 전개로 당시만 해도 매우 낯선 영상을 탄생시켰다.
누벨바그 영화들은 지적이면서도 즉흥적인 영감에 충실하다. 이들이 창조한 현실적이고 활력 넘치는 등장인물들은 기존 도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또, 야외 자연광을 활용하거나 당시 개발된 핸드헬드 카메라를 활용한 즉흥촬영을 통해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영상과 음향을 얻어내려고 노력했다. 실험을 통해 전통과 결별하고 사회적 금기에 도전했던 모던 시네마였다. 대표작으로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 루이 말의 ‘연인들’(1958),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장뤼크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196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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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번의 구타’ |
누벨바그의 출현은 1940년대 말부터 유럽 영화시장을 위협한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범람과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나선 프랑스 정부의 문화정책과도 무관치 않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의 영화시장이 할리우드 영화에 잠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쿼터제를 시행했다. 아울러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과 단편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자유롭게 영화를 관람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시네마테크 운영도 장려했다. 여기서 젊은 영화인들은 희귀영화들과 저평가된 작품들을 재발견하면서 작가정책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새로운 영화 흐름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대착오적인 ‘블랙리스트’ 작성,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를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한다는 문구를 자랑스럽게 내 건 우리 극장가를 돌아보면서, 문득 70여년 전 누벨바그 영화인들을 생각한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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