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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별보복 공포… ‘안전이별법’ 찾는 시대

입력 : 2017-10-29 21:04:07 수정 : 2017-10-30 08: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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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횡행… ‘슬픈 자화상’ / 말다툼 넘어 성폭행·살인까지 / 2016년 데이트폭력 8367명 입건 / 2017년 상반기 검거인원만 4565명 / 집안 파산·큰 돈 빌려줘 부탁 등 / 인터넷선 이별방법 추천하기도
최근 연인과 이별한 대학생 김모(23·여)씨는 전 남자친구의 ‘보복’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물리적 폭행은 아니지만, 지인들에게 김씨의 험담을 늘어놓는가 하면 온라인상에 김씨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암시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있다. 더 나아가 스킨십이나 성생활 등 가장 내밀한 이야기까지 주변에 떠벌리고 다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씨의 자취방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 다시 만나자고 하는 통에 김씨는 집밖을 나가기가 두렵단다. 김씨는 “전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나의 이별이 갑작스러웠을 수는 있지만, 나는 그의 무관심과 반복되는 거짓말에 지쳐가고 있었다. 별다른 싸움 없이 이별을 통보했더니 이렇게 보복을 하는 것 같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최근 김씨처럼 헤어진 연인의 보복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헤어진 연의 보복 역시 ‘데이트 폭력’의 일종이다. 데이트 폭력은 사귀고 있는 연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 사귀었던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서적·언어적·성적·경제적 폭력도 포함한다. 단순한 말다툼이나 협박, 스토킹에 심지어 성폭행, 살인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18일 청주지법은 이별을 통보한 전 여자친구를 찾아가 성폭행한 남성을 강간치상으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은 전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강모(33)씨를 원심과 같은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경찰도 전국 경찰서에 데이트 폭력 근절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해 집중 단속을 벌이고는 있지만, 피해자가 감소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데이트 폭력 신고는 9364건이 접수돼 8367명이 형사 입건됐다. 2015년(7692명) 비해 8.8% 늘어난 수치다. 올해 상반기에도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된 인원은 4565명으로 집계됐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데이트폭력으로 인해 사망한 피해자만 233명에 이른다. 한국여성의 전화가 2016년 남편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살인 및 살인미수를 분석한 결과 ‘이혼·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한·만남을 거부해서’ 죽임을 당한 경우가 13명이었다. 같은 이유로 인한 살인미수는 50명으로 전체(105명) 대비 47.62%에 달할 정도로 ‘이별 범죄’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별 후 보복범죄가 횡횡하다 보니 ‘안전이별’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안정이별은 사귀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스토킹이나 감금, 구타, 협박 없이 자신의 안위와 자존감을 보전하며 이별하는 것을 뜻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안전하게 이별하는 방법’으로 ‘불치병에 걸렸다고 해라’, ‘큰 돈을 빌려달라고 해라’, ‘집안이 망했다고 해라’, ‘유학을 떠난다고 해라’, ‘트림이나 방귀 등 정떨어질 만한 짓을 해라’ 등의 우스갯소리 같은 방법을 추천하기도 한다. 안전이별이란 신조어는 이별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연인관계의 슬픈 자화상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데이트폭력이나 이별 범죄를 다스릴 만한 법적인 보호장치가 아직 미비하다. 보통은 단순 폭행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인 간의 집착에서 시작되는 스토킹도 그저 경범죄로 분류되어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조치 등 처벌 수위가 경미한 상황이다. 물리적 폭력이 있을 때나 중한 처벌이 가능할뿐이지 언어적 협박이나 정식적 폭력은 입증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성폭행이나 살인 등의 강력범죄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한 데이트 폭력을 그저 ‘사랑싸움’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스토킹이나 데이트폭력, 젠더 폭력 방지법 등 여러 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현재는 피해자들의 신변이 위협받아도 상해까지 않는 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스토킹이나 온라인 폭력 등 데이트폭력의 전조 증상을 불법이라고 제재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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