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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100년 전 풍광 그대로… 자연, 문화경관이 되다

입력 : 2017-07-12 06:00:00 수정 : 2017-07-12 09: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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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농업인이 직접 보고 느낀 '사람 사는 유럽 농촌'
5월 독일 땅에는 노란 꽃이 피었다. 여정은 중부 아이제나흐에서 시작해 옛 동독 지역으로 내달렸다. 길 사방이 유채꽃으로 자욱했다. 상공에서 감탄했던 노란빛 벌판의 정체였다. 드넓은 초지 풍경은 드레스덴에 도달하는 이틀 동안 천천히 이어졌다. 달리는 차창은 녹색 지평선을 담은 유화 액자 같았다.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엘마우 마을 풍경. 눈 쌓인 알프스 산맥, 소들이 풀 뜯는 초지, 그리고 침엽수림이 어우러진 문화경관이다.
단지 아름다운 자연이라고만 생각했던 이곳 풍경은 ‘문화경관’이라 불린다. 허리춤을 훌쩍 넘긴 유채 군락에서는 농부의 손길이 묻어났고, 단정한 초원은 사실 방목된 소들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농촌’을 찾아 나선 우리는 이미 그 땅 위에 있었다.

지난 5월 10일부터 20일까지 대산농촌재단이 주최한 독일·오스트리아 해외농업연수에 동행했다. ‘미래가 있는 농촌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주제로 국내 농업인들이 유럽 농촌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연수에는 ‘떠나지 않는 농촌’을 위한 농업정책과 농촌공동체 복원, 지역 개발 방향을 고민하는 농업 관계자 20명이 참여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로 유명한 몬드제(mondsee)호수.
연수 중반 알프스산맥 아래에 위치한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엘마우 마을에서 이틀간 머물렀다. 푸른 언덕에 풀 뜯는 소, 병풍처럼 펼쳐진 설산, 그리고 군데군데 닿아 있는 숲. 엘마우의 풍경은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속 알프스를 저버리지 않았다. 변함없음에 우연은 없었다. 오래도록 지켜진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농촌을 떠나지 않고 경관을 지켜온 농부의 피땀이 있었다.

“어릴 때와 거의 달라진 게 없습니다. 100년 전 마을 사진을 봐도 지금 모습과 똑같습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의 생존기반인 환경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이 ‘농민의 사명’입니다.”

2, 엘마우 마을 초지에서 쉴트(Shild)씨네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일반적으로
1ha(3000평)당 1마리의 소를 기른다.
엘마우 마을 초지에서 맞이하는 아침햇살.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엘마우 마을 풍경. 민들레꽃이 만개한 초지 사이로 오솔길이 굽이친다.
엘마우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있는 쉴트(Shild)씨는 아름다운 문화경관을 강조했다. 그들은 조상이 심어놓은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베지 않는 데 자부심이 있었다. 당장 농사일에 방해가 될지언정 나무의 생태적 가치와 그 안에 깃든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한 해 예산 1400억유로 중 40% 가까이를 농업과 농촌에 지원한다. 국가별로 농업정책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유럽연합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유럽 농정의 기본목표는 ‘농업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고 문화경관을 유지·보전하는 것’이다. 핵심가치가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에 있다고 보는 셈이다.

독일 아이제나흐에서 드레스덴으로 이동하는 길에 펼쳐진 유채꽃밭.
독일의 농업직불금은 ‘문화경관 직불금’으로도 불린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비, 맑은 물과 토양을 보호, 생태계 다양성을 유지, 문화경관을 보전, 동물복지를 실행하는 농가를 지원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국민총생산 대비 농민총생산은 1%에 불과하지만, 매년 60억유로라는 막대한 예산이 농업정책 보조금으로 쓰인다. 밑바탕에는 농민들이 보조금보다 더 크게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 괴리스리드의 전경. 괴리스리드 지방자치단체는 1998년 마을 가꾸기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거친 황제’란 별칭을 가진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엘마우의 알프스산맥 위로 온통 별들이다.
고유한 문화경관을 가꿔 나가고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독일·오스트리아 농부의 삶은 자연과 닮아 있었다. 여전히 억대 매출을 목표 삼아 신봉하고 가치창출만을 부르짖는 우리네 농업은 자연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 농업, 우리는 살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

글·사진 독일, 오스트리아=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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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에른주 마무어슈테텐 라이자흐 농가의 농장주 피터 니더탄러가 과수원을 소개하고 있다. 라이자흐 과수농가는 고산지대라는 악조건을 딛고 과수농사에 도전해 차별화된 소득을 창출했다.
독일 바이에른주 괴리스리드의 테아 반스테이너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조성된 ‘자연 산책길’을 소개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 캠텐 농업직업학교에서 원예 실습중인 학생들.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슈와츠 마을 파르흐너호프 농장에서 빵을 굽고 있는 발터 크라이들과 아그네스 크라이들 부부. 이들이 만든 빵은 오스트리아에서 최고로 치는 ‘맛의 왕관’ 대회에서 5차례 1등을 차지했다.
알프스의 빙하물이 녹아 흐르는 시냇물과 람사우 교회. 람사우 교회의 풍경은 미대생들의 단골 스케치 소재이며 직소퍼즐(Jigsaw puzzle)의 원화로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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