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쓴 물건에는 추억이 많이 담겨 애착
겉모습 보다 내용을 볼 수 있는 눈 가져야 텔레비전이 고장 났다. 소리는 나는데 화면이 새까맣게 나온다. AS를 받아 고치려고 하니 5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고치는 것이 나은가요, 아니면 새로 사는 것이 좋은가요?’라고 수리 기사님에게 물어보았더니 “우리 같은 경우는 직원 할인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싸게 고칠 수 있지만 보통의 경우는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사는 쪽이 낫죠”라고 조언한다.
이 텔레비전은 이사 왔을 때 선물로 받았는데 아직 10년도 되지 않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자동차나 컴퓨터를 비롯해 구두, 옷 등 여러 물건이 AS를 부탁하면 잘 고쳐주어서 이번에도 당연히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비쌀 줄 몰랐다. 상품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본에 있을 때는 한 번 고장 나면 좋은 제품이 계속 나오니까 수리를 받지 않고 새것으로 산 적이 종종 있었는데 그런 경향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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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
전에 이사할 때 밥솥의 밥을 가져가면 안 된다는 어머님의 말씀을 깜박하고 가져갔다가 혼난 적이 있다. 한국에는 이사할 때 오래된 물건들은 버리고 새것으로 바꾼다. 그것은 과거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과감하게 정리해서 집도, 가구도 새것을 얻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유럽의 나라처럼 오래된 집을 고치며 살고 할머니가 쓰신 냄비를 대대로 이어받아 사용하는 그런 생활도 나는 동경한다. 오래 쓴 물건에는 그때 어떤 이와의 여러 추억이 담겨 있어서 애착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물건에도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때도 있었다. 전에 집집마다 방문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일이다.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어서 다음 집에 가려고 하면 나지막하게 집이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은 적 있다. 그 소리는 내 마음에 따라 ‘안녕’이라고도 들리고 ‘잘가’라고도 들리며 ‘힘내’라고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처음에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 자주 일어났던 신기한 경험이었다.
사물을 대하는 법은 생활방식이 다른 만큼 사람마다 다르다. 의리 있게 끝까지 사귀는 사람도 있고 그것은 너무 고집스럽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싼 돈을 내지 않아도 보기 좋고, 가격도 싼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값싸고 예쁜 물건은 사서 얼마 지나면 눈을 돌려 다시 다른 것들을 고르기 일쑤다. 조금 비싸더라도 질이 좋은 물건을 신중하게 골라 오래 쓰는 생활습관도 나쁘지 않다. 그런 생활방식은 요즘 자주 듣는 ‘미니멀 라이프’와 비슷하다. 이 말은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 물건으로 살아가는 생활 스타일이다. 그래서 미니멀 라이프라고 하면 무소유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쉽지만, 그 근본 의미는 생활 속에서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잘 생각해서 더욱 쾌적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예쁘고 겉보기만 중요시하는 사회적 풍조가 있는 가운데 보기 좋은 것에 눈속임 당하지 말고 그 속의 내용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나에게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 생활이다. 요즘은 사물을 대하는 법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 나타나게 된다는 생각에, 사물의 가치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 위해 나 자신의 삶과 생활이 진실한 것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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