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이 몰려나왔다. 어림잡아 20명이다.
제각기 인사하고는 흩어지니 어느새 강의실이 텅 비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무도 없는 강의실을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가느라 바빠 강의실 불을 끄지 않고 학생들이 사라진 것이다.
최근 수도권 A대학교의 한 강의실에서 포착한 풍경이다.
이날 같은 대학교 단과대 두 건물을 돌아본 결과 10곳 중 2곳 비율로 불 켜진 빈 강의실이 발견됐다.
우연히 강의실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학생을 마주쳤지만, 켜진 불은 안중에도 없는 듯 바쁘게 저 멀리 사라졌다. 당연한 듯한 모습이어서 보는 내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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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강의실을 조명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창문 너머 빛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사진 촬영 시점은 낮으로 추정된다. 이 강의실은 2013년 ‘본인조치 결과 신고하기’ 캠페인에 참여한 명지대학교 재학생이 촬영했다. 학교 관계자의 허가를 받아 홈페이지 게시판 캡처. |
2013년 서울시가 발표한 ‘에너지 다소비 건물 100곳(2012년 기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가 15만2664MWh로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연세대(6만8384MWh)와 고려대(6만3990MWh) 등 대학 건물의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내 54개 대학 중 21곳이 에너지 다소비 건물에 포함됐다. 대학교의 전기 낭비가 그만큼 심하다는 뜻이다.
30일 오후 3시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이 그린캠퍼스로 지정한 수도권 소재의 B대학 단과대 건물 두 곳을 둘러봤다. 칠판 앞 조명이 켜진 채 텅 빈 강의실 하나를 제외하면 다행히도 남은 빈 강의실의 불은 모두 꺼진 상태였다.
환경부는 2011년부터 대학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친환경 문화 확산을 위해 그린캠퍼스 조성 지원 사업을 추진, 지난해까지 총 40개 대학을 그린캠퍼스로 선정했다.
그린캠퍼스로 선정된 대학은 지원 당시 제출한 사업 계획에 따라 친환경 교정 조성, 그린인재 양성 등 연차별 그린캠퍼스 조성 사업을 진행한다. 전기 절감뿐만 아니라 식재 조성 등 친환경 캠퍼스 만들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환경부로부터 3년간 매년 4000만원씩 총 1억2000만원을 지원받아 에너지 절감 운동을 펼친다. 한국환경공단은 대학 내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감축계획 수립 등에 대한 기술지원을 통해 자율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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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강의실을 조명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창문 너머 빛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사진 촬영 시점은 낮으로 추정된다. 이 강의실은 2013년 ‘본인조치 결과 신고하기’ 캠페인에 참여한 명지대학교 재학생이 촬영했다. 불이 켜진 강의실(위)과 끄고 난 후(아래)의 비교 사진. 학교 관계자의 허가를 받아 홈페이지 게시판 캡처. |
그린캠퍼스 시행 첫해인 2011년에 대상 학교로 선정됐던 명지대학교는 2013년 학생들이 빈 강의실의 불을 끄고 이를 학교 게시판에서 알리는 ‘본인조치 결과 신고하기’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한 학생은 게시물에서 “빈 강의실을 소등하였습니다”라며 불 켜진 강의실과 끈 후의 강의실 사진 여러 장을 올려 조회수 수백건을 기록했다. 게시판 날짜상으로 신고 캠페인은 4월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간 진행됐다. 캠페인은 빈 강의실 소등 외에 쓰레기 줍기 등도 포함했다.
명지대 관계자는 “‘어스 아워(Earth Hour)’ 캠페인과 맞물려 일부 학생들이 빈 강의실의 불을 껐다”며 “그린캠퍼스 지정학교 기간이 끝난 후에도 빈 강의실 소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에너지 절감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대학교 재학생들도 2014년 페이스북에서 ‘불 끄고 가세요’라는 캠페인을 펼쳐 강의실 불을 끄고 이를 인증한 사람에게 각종 상품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한 바 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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