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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동해 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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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2 02:01:28 수정 : 2016-11-02 0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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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약속 절로 오징어 먹물 되니/ 마음이야 누군들 농어 순채 생각 않으랴.” 다산 정약용이 두뭇개 유하정(流霞亭)에 올라 읊은 시구다. 두뭇개는 서울 옥수동 옛 마을 이름이다. 오징어 먹물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탐관오리는 장부를 조작할 때 오징어 먹물을 썼다. 시간이 흐르면 색이 빠져 장부에 쓴 글은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 오적어묵계(烏賊魚墨契). 믿기 힘들고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이르는 말이다. 오적어는 오징어를 한자로 바꾼 말이다. 이두의 유산일까, 중국식 한자어일까.

오징어 먹물을 그런 식으로 쓰니 오징어 보는 눈이 곱지 않다. 오징어는 무슨 죄가 있을까. 비아냥거리는 말투, “먹물 좀 먹었네.” 이때 먹물도 오징어 먹물일까.

오징어는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1808년 만들어진 ‘만기요람’의 글. “아치(兒雉) 20마리 한 마리 값 2냥. 생오징어 15마리 한 마리 값 6전.” 아치는 새끼 꿩이다. 흔했다. 오징어 세 마리로 아치 한 마리를 바꾸지 못한다. 왜 푸대접을 받았을까. 오징어는 1년생이다. 해산물 가운데 수명이 짧은 축에 속한다. 붕어 30년, 대구 15년, 뱀장어 12년, 도다리 10년, 홍어 6년…. 뱀장어는 60년까지 산다고 하기도 한다. 고래 수명은 웬만한 종류는 60∼70년에 이른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오징어의 생장 속도는 놀랍다. 그러니 흔하고, 값싸고, 푸대접받은 것은 아닐까.

가난했던 1970년대. 가끔 오징어를 먹었다. 초장에 찍어 먹는 데친 오징어. 맛이 일품이다. 아버지 상에 오른 데친 오징어를 보며 침을 꿀떡꿀떡 삼킨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오징어의 씨가 말라 가는 모양이다. 지난달 울릉도 수협에서 위탁판매한 오징어는 작년보다 62%쯤 줄었다고 한다. 잡히지 않은 탓이다. 왜 줄었을까. 북한으로부터 조업권을 산 중국어선들. 까맣게 몰려들어 북쪽 동해의 해산물을 싹쓸이하니 남쪽 어장까지 황폐해진 모양이다. 오징어가 귀한 대접 받을 날도 이제 머지않은 걸까. 혹시 데친 오징어를 초장에 찍으며 아련한 추억을 곱씹는 일도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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