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만영화 ‘부산행’의 전(前)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각본/감독 연상호, 제작 스튜디오 다다쇼, 제공/배급 NEW)이 개봉한다고 했을 때, 아마 많은 이들이 ‘부산행’과 비슷한 내용의 재난드라마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연상호 감독은 이런 기대와 상상을 무참히 깨버리고 ‘부산행’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드라마를 완성해냈다. ‘서울역’은 그의 전작들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과 오히려 닿아 있다.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탓에 상업성과 오락성을 고려해 만든 ‘부산행’과 달리, 저예산 애니메이션인 ‘서울역’은 서울역이란 특정 공간에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도심이 아수라장이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10대 가출소녀 혜선(심은경, 이하 목소리 연기)을 중심으로 그녀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석규(류승룡), 혜선의 남자친구 기웅(이준)이 길거리를 활보하는 좀비떼를 피해 살아 남으려고 애쓰는 이야기를 담았다. ‘부산행’에서는 평범한 시민들이 주인공이었다면, ‘서울역’은 그보다 더 밑바닥 소외된 계층을 다룬다.
좀비 재난물이라는 점, 집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는 ‘부산행’과 궤를 함께한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은 대중성을 담보해야 했던 ‘부산행’과는 달리, 재난물의 공식화된 스토리를 벗어젖히고 전작들(돼지의 왕, 사이비)로의 회귀를 꿈꿨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투영해낸 점이 그러하다.
서울역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연상되는 노숙자 사회나 가족의 파괴, 가출청소년, 원조교제 등 사회문제 등이 스토리 전면에 부각되는가 하면, 전체적인 그림이나 인물 분위기가 그의 전작들보다도 훨씬 톤 다운됐다. 이는 연 감독 스스로 의도했다고 언급한 부분으로, 더욱 암울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좀비 물을 창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역’은 ‘부산행’의 총 제작비 115억원의 7% 수준밖에 안 되는 8억원(총제)이 투입된 저예산 영화다. 제작비에 대한 부담이 적었던 만큼 좀 더 ‘극단적’ 선택들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연상호 감독의 작품답게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사람을 해치는 것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깔린다. 이 비관적이고 우울한 결말로 인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지만, 그로부터 오는 울림 또한 적지 않다. 결국은 사람이 괴물이다.
연 감독은 애니메이션 작업 전 배우들을 캐스팅해 ‘선녹음’을 하는 작업방식을 추구하기로도 유명하다. 이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리얼리티를 배가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혜선의 목소리를 담당한 심은경이나 석규 역의 류승룡 등 배우들의 보이지 않는 연기는 그런 면에서 작품의 몰입도와 완성도 면에서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아이돌그룹 엠블랙 출신 배우 이준의 목소리 연기는 정말 그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전문성이 느껴진다. 15세이상관람가. 93분. 8월18일 개봉.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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