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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13> "아들아, 영어 유치원은 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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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02 13:58:32 수정 : 2016-07-02 1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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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제임스 이리 좀 와봐.”

최근 나는 아이와 놀러나간 동네 놀이터에서 서로를 제임스와 크리스틴이라 부르는 유치원생들을 만났다. 여자아이의 엄마와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였다. 슬쩍 말을 걸었다. “아이들이 왜 영어 이름으로 부르나요?”

그녀는 두 아이가 같은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데 그곳에서는 영어로 된 이름만 가르쳐 준다고 했다. 영어 유치원에 대해 직접 들은 건 처음이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테지만, 엄마가 된 지금은 이 상황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친구의 한글 이름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16개월 아들은 제임스와 크리스틴 사이에서 해맑게 뛰어다녔다.

나는 아이의 연령을 유치원생 나이로 높여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를 상상했다. ‘그때도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제임스와 크리스틴과 어울릴 수 있을까.’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닌 덕에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 내가 처음 알파벳을 암기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도 집에서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일부 아이들이 교실에 영어 교재를 갖고 와서 “A, B, C, D∼”, “Good morning, Good afternoon” 등의 단어를 소리내 읽었다.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애들만 책 주변을 둘러싸고 경쟁적으로 단어를 말했다. 나는 이 무리에 끼지 못했다. ‘저 애들은 어떻게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은 걸 알고 있지?’ 어린 마음에 부러움과 불쾌감, 이질감, 소외감 등을 느꼈다.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며 나는 아이의 교육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 느꼈던 열등감을 내 아이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과 선행 학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한 개인의 의식이 충돌했다. 나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교육에 돈을 쏟아붓는 세태에 편승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제임스와 크리스틴 사건 뒤 ‘내 아이가 선행 학습을 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면? 아아 그건 싫어’, ‘반대로 어린 나이에 영어 동화책을 술술 읽으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한다면?’ 등 가까운 미래의 고민을 앞서 하게 됐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영어 유치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른 부모들의 경험담을 살펴봤다. 놀라웠던 건 영어 유치원에 적응하기 위해선 등록 전에 미리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점이었다. 영어만 사용하는 곳에 아이가 입도 벙끗 못 하는 상태로 입학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 유치원이라 부르지만 사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가까웠다. 단체 생활을 통해 인성, 사회성 교육이 이뤄지긴 해도 일반 유치원에 비해 ‘언어 교육’의 비중이 높았다. 중요한 건 영어 유치원은 영어 교육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영어 유치원을 졸업하고 이중언어 사용 환경이 끝나면 그간의 노력이 무용지물 될 수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원어민 과외를 붙이거나 해외 여행 등을 꾸준히 다니며 관심을 불어넣어줘야 한다. “영어 유치원 보냈는데 소용 없었다”는 사례는 영어 사용 환경을 이어가지 못한 어설픈 투자 탓이라고 경험자들은 지적했다.

아, 생각만으로도 나는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았다. 물론 영어 유치원은 소수 정예로 운영되고 다양한 문화에 마음을 여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배우 이범수의 딸은 피서지에서 만난 영어권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나는 아이가 영어를 말할 줄 아는 것보다 스스럼 없이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영어를 공부 형식이 아니라 생활에서 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런 아이들은 열린 자세로 다른 문화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자녀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나는 복잡한 심정을 신랑에게 털어놓았다. 남편은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도 씀씀이를 줄이지 않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 100만원 이상 들어가는 영어 유치원을 보내면 더욱 절약을 해야 한다. 30년간 상환해야 하는 주택 대출과 노후 대비는 우리 부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또 지금이야 교육비 지출이 ‘제로’지만 일단 가르치기 시작하면 지출 항목이 과연 영어 교육뿐일까. 욕심만큼 늘어날 것이다. 신랑은 “차라리 그 돈으로 아이랑 놀러다니고 싶다”며 “남자 아이인데 호연지기를 길러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영어 유치원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교육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궤도에 올라서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하다가는 자식에게 노후를 기대야 할지도 모른다. 또 이렇게까지 영어 교육에 매달려서 얻는 게 무엇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영어 교육 광풍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됐다. 직업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됐는데 업무 수행에 영어가 꼭 필요한 직군은 소수였기 때문이다. 해외 거래처를 둔 수출 기업이나 회사에서 외국인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부서 정도였다. 그밖의 대부분은 잘하면 좋고 못해도 크게 상관 없었다. 서류 심사에서 토익 점수 등 영어 성적을 보지 않는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영어만 잘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국내 영어 교육 시장 덕분이었다. 영어 능통자가 자신의 특기를 취직으로 연결하지 못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 가르치며 충분히 밥벌이를 할 수 있지 않은가.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강의부터 국내에서 이중 언어 상황을 만들어주는 환경 세팅까지 영어 교육의 수요 범위는 확장되고 있다.

나는 이 경쟁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아이를 키울 자신은 없다. 다만 아이에게 흥미와 재미를 일깨워주되, 내 가랑이를 찢는 과도한 경제적 투입은 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가 무언가에 대해 “하고 싶다”고 주장할 때는 그 욕구에 귀기울이겠지만,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데 부모가 먼저 나서 영어 유치원, 해외 연수, 여행, 원어민 과외 등으로 이어지는 ‘우월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기로 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자신의 목을 죄는 현 상황을 바꾸려면 많은 학부모들이 이런 결심에 동참해야 한다.

아들이 처음 접하게 되는 영어는 집에서 엄마랑 영어를 사용하며 노는 ‘엄마표 영어’일 것이다. 아이가 흥미를 보이면 더욱 돕고, 아니라면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시선을 돌릴 생각이다.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은 꼭 영어를 잘해야만 가는 게 아니다. 일부분 유리할 뿐이다. 그것이 부모가 자녀 교육에 올인하며 노후대비를 포기해도 될 만큼 효과적이고 가치 있는 일인지 의문스럽다.

국제부 기자 engine@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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