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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문화재] 조선시대 인기 벼슬 능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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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04 21:55:38 수정 : 2016-06-15 19: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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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은 40기 모두가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유교철학과 풍수사상이 담긴 탁월한 조형미에다 단일 왕조 왕가의 무덤 모두가 남아 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무려 500년, 왕릉은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온전히 견뎌낼 수 있었을까. 직책은 낮았으나 다방면에서 역량을 발휘했던 ‘능참봉’이 있어서 가능했다.
능참봉은 종9품의 관리였다. 오늘날로 치면 9급 공무원이니 말단이다. 하지만 임금의 능을 모시는 실무자로서 직책보다 큰 권한을 행사했다. 조선시대 대표적 능참봉인 황윤석이 쓴 ‘이재난고’ 등의 기록에 따르면 능참봉은 종3품의 부사와도 거리낌없이 왕릉 관리 문제를 의논했다.

“나이 70에 능참봉을 했더니 한달에 거동이 스물아홉번”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능참봉의 역할은 다양했다. 두 사람이 보름씩 2교대로 재실(齋室·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에 기거하며 근무했는데 왕과 왕비의 제례를 관장하고 능을 살피는 ‘봉심’(奉審), 능역 내 수목관리, ‘투작’(偸斫·함부로 나무를 베는 일) 감시 등이 주 업무였다. 능역 안 건물과 석물을 개수하는 일에 감독을 맡았고, 관리 인원도 살폈다. 유학적 지식은 물론 건축, 토목, 조경 등 기술분야의 전문성까지 겸비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순종의 유릉을 조성하는 모습.
시험을 거치지 않고 특별채용 형식으로 능참봉을 임용했다는 ‘성종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데다 왕릉 수호라는 권한 때문에 당대 최고 선호 직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은 ‘경국대전’에 규정을 둘 정도로 능역 관리에 신경을 썼다. 능참봉이 그 중심에 있었다.

왕릉이 긴 시간을 살아남아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은 데는 능참봉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조선왕릉관리소를 중심으로 동부·서부·중부 등 3개 지구, 14개 권역에서 문화재청 직원들이 능참봉의 역할을 계승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원호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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