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의 위(胃)가 위협받고 있다. 잦은 음주와 야근, 운동부족, 좌식 위주의 생활습관은 소화불량을 야기하고, 나아가 위장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천천히 꼭꼭 씹어 식사하고 식후 일정 시간은 산책을 해야 소화가 원활히 이루어지는데, 오늘날 직장인들은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밥을 먹고 쉴 틈도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아 일을 하니 소화불량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소화불량 증상을 겪을 때 사람들은 흔히 '체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체'(滯)가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특히 소화질환과 관련한 단어들은 한의학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흔하다. '체했다'는 물론, '비위'(脾胃)가 상하다, '담'(痰)이 들다는 단어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처럼 한의학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있으며,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소화질환 관련 한의학 용어들,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단아안한의원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 체한다는 건 기(氣)가 막혔다는 의미
우리나라 말에는 소화불량을 표현하는 단어가 다양한 편이다. '얹히다', '체하다', '더부룩하다' 등 여러 가지 단어를 사용한다. 이 중에서도 '체하다'는 소통이 되지 않고 막혔다는 뜻으로서, 소화불량 증상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아 막혔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온몸을 순환하는 '기'(氣)의 흐름이 막혔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의학에서는 체하는 증상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갑자기 심하게 체한 경우는 '급체'(急滯), 일반적으로 체한 증상은 식체(食滯)라고 부른다. 급체를 한 경우 심하면 기절하기도 하는데, 몸속을 흐르던 '기'가 소통되지 못하고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의원에서는 체했을 때 기혈을 통하게 하기 위해 손을 침으로 찔러 피를 내는 방법을 쓴다. 가끔 민간요법으로 집에서 바늘로 손을 따는 경우도 한의사의 처치를 흉내 낸 것이다. 하지만 비전문가가 침을 놓으면 자칫 감염이나 부작용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 삼가는 게 좋다.
◇ 마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비위'
흔히 악취를 맡거나 혐오스러운 물체를 보고 나서 구역질이 날 때 '비위가 상한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위'란 비장(脾臟)과 위장(胃臟)을 말한다. 비위는 우리 몸에서 소화를 담당하는 기관인데, 비위가 상하면 구역질이 나고 심하면 구토를 하게 되기 때문에 '비위가 상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특히 비위는 스트레스와도 관련이 깊다. 한의학에서는 칠정(七情: 근심, 걱정, 놀람, 공포,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 중에서도 근심걱정이 지나칠 경우 비위가 상해 소화불량이 발생한다고 본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혈순환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해 손발이 차가워지고, 음식을 먹으면 쉽게 소화시키지 못하는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비위는 이처럼 마음가짐에 크게 영향을 받는 장기이기 때문에 '비위를 맞추다', '비위에 거슬리다'와 같이 기분이 좋고 나쁨을 나타낼 때도 자주 활용된다. 따라서 만약 별다른 원인이 없는데도 소화불량 증상이 지속된다면, 스트레스로 인한 비위 기능 저하를 의심하고 의료기관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담은 어깨에만 걸리는 게 아니다
'담이 결리다', '담이 들다'라는 표현은 근육의 통증 때문에 신체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할 때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담'은 근육뿐만 아니라 위에도 생길 수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담이란 체내를 순환하는 분비액이 한 부위에 몰려 굳어진 것으로서, 위장에 담이 쌓인 것을 '담적병'(痰積病)이라고 부른다.
담적이 위장에 쌓이면 소화불량, 두통, 어지럼증, 부종, 입 냄새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담적을 결코 가볍게 생각할 게 아니라, 치료해야 할 질환으로 여기고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위장에 형성된 담적은 독소 물질을 분비하며, 이 독소가 전신으로 퍼지며 내부 장기는 물론 피부와 심리적인 부분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위가 아프면 얼굴로 증상이 드러날 수 있는데, 얼굴에 위 경락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소화기 상태가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단아안한의원 관계자는 "담적병 환자들은 소화불량과 함께 위풍증, 다크서클, 여드름 등 얼굴 피부에도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담적과 같은 소화기 질환은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며, 원인을 제거했을 때 소화불량 증상은 물론 피부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화불량의 원인은 스트레스, 구안와사, 잘못된 식습관 등 다양하므로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다면 의료기관을 방문해 검사를 받길 권한다"고 말했다.
헬스팀 김봉수 기자 bs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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