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성 영화계에 재개봉 유행이 불어 닥친 가운데,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수입 티캐스트)가 조용한 흥행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 4주차인 지난 10일 전국 7만 관객을 넘어섰다. 상업영화로 치면 일일 관객 수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숫자지만, 영화가 안겨주는 감동의 울림으로 따지면 ‘블록버스터 저리 가라’할 정도다.
영화에 그 흔한 안타고니스트도, 클라이맥스도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가 가진 힘을 무엇일까.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현 시대 가족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네 자매를 통한 가족의 결핍과 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시다 아키미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영화는 작은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를 배경으로 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카호) 등 세 자매가 15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홀로 남겨진 이복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나 함께 살게 되면서 시작된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집을 떠나면서 서로만을 의지하며 자라온 세 자매들은 존재조차 알지 못햇던 스즈를 새로운 동생이자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은 어떤 갈등도 없이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자연스럽다.
가족의 재편성 후 잔잔한 호수 같은 일상이 계속되지만, 그 와중에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로 인해 인물들은 속마음을 들킨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네 자매들은 각자 사연을 안고 산다. 거장다운 세련된 방식이다.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은데 히로카즈 감독의 섬세한 손길은 관객들의 마음에 일찍이 와 닿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유독 먹는 신(먹방)에 집착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도 다르지 않다. 네 자매의 사계절을 담은 이 영화에는 정어리 튀김, 잔멸치 덮밥, 카레, 매실주 등 카마쿠라 지방색이 가득한 다양한 음식장면이 등장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이렇게 먹는 장면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인 식구(食口), 즉 ‘한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더운 여름 네 자매가 툇마루에 둘러앉아 시원한 국수를 말아먹는 장면은 새롭게 식구가 된 이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가족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주변에 흔하게 일어나는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영화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시작한 영화는 세 자매의 음식을 만들어줬던 단골집 바다고양이 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겉으론 덤덤한 듯 보이지만 아버지를 그리워한 스즈의 두 어깨를 감싸는 언니들의 손길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안기며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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