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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미술계의 반전녀… ‘아이돌의 별’을 창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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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1-11 20:41:42 수정 : 2016-01-12 17: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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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티스트 마리킴의 전시 ‘SETI’ 나는 반전의 재미를 주는 작가이고 싶다. 물감에 찌든 작업복에 고뇌하는 모습은 작업실에서도 충분하다. 대중의 예상치를 벗어나는 것이 기쁨을 줄 수 있다면 나는 기필코 거기에 봉사하려 한다. 작가가 전시장에 서는 것은 배우가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것과 같다. 작가도 가난이 아닌 인기로 먹고살아야 한다. 대중은 환타지를 원한다. 아이돌 가수 같은 외모와 튀는 패션으로 주목 받고 있는 팝아티스트 마리킴의 작가적 삶을 독백식으로 정리해 본다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그의 전시가 시작되는 날엔 연예인, 패션디자이너 등 대중 스타들의 얼굴도 흔히 볼 수 있다.

“저는 재미있는게 좋아요. 작가가 흥미로워야 다시 보고 싶지요” 재미를 위해서라면 그는 김수현 등 배우들과도 스캔들이 빵빵 터졌으면 좋겠다며 조크를 던졌다. 순수미술 형식과 대중문화 정서를 결합한 팝아트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일본 작가 나라 요시토모를 연상시킨다. 그의 별명이 ‘여자 나라 요시토모’다. 두 사람 모두 큰 눈을 가진 캐릭터 그림에 빠진 것도 어린 시절 접했던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향이다. 

작품 ‘미래 소녀’ 옆에서 같은 포즈를 취해 보이고 있는 마리킴. 그의 분신인 캐릭터 아이돌이 생명의 근원인 우주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예술과 생명의 근원을 환기시켜 주는 작품이다.
“학창 시절 만화책을 참 많아 봤어요. 만화책 그림을 따라 그리고, 야하다 싶으면 친구들과 돌려 보기도 했지요.”

해외 ‘직구’와 동대문 패션을 적절히 조합해 즐길 줄 아는 그는 패션쇼 현장에도 종종 나타난다. 좋아하는 패션디자이너를 응원해 주기 위해서다. 그의 행보와 외형만 보면 작업과는 거리가 먼 날라리작가 같다. 하지만 작업실에 들어서면 전사같이 작품과 씨름을 한다.

“사람들에게 죽어라하고 작업하는 모습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요. 삶엔 반전의 묘미가 있어야 신이 나지요.” 그의 화려함 이면엔 그런 깊은 뜻이 숨겨 있다. 이런 그의 모습에 가장 먼저 화답한 곳은 패션 쪽이다. 국내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도 그와 함께 협업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리킴은 요즘 영화 제작에도 나섰다. 시나리오와 연출까지 맡았다. 직접 출연도 한다. 고뇌하는 작가는 죽고 외형적 성공을 추구하는 작가가 살아남는 스토리다. 성공을 위해 작품을 그리던 미술가가 회의에 빠져 자신의 작품을 불태우려 하자, 그림이 미술가를 죽이고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한다는 줄거리다. 

눈동자가 추상화 된 작품 ‘불완전한 솔라시스템’. 인간의 욕망, 고정관념, 가상현실 등 현대사회에서 마주하는 기이한 모습들이 투영되고 있다.
“현재 후반 컴퓨터 그래픽(CG) 작업이 진행 중이에요. 완성 일정에 따라 칸 또는 베니스 등 국제영화제에 출품하려고 해요.”

눈이 큰 그의 캐릭터 아이돌은 눈(eye·아이)과 인형(doll·돌)을 합쳐 창안한 것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작품을 구매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이런 인연으로 마리킴은 YG의 대표 걸그룹 투애니원(2NE1)의 뮤직비디오 ‘헤이트 유(Hate You)’ 감독과 미니앨범 아트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호주 로열맬버른 공과대학(RMIT)에서 멀티미디어를 전공하고 크리에이티브 미디어로 석사학위를 받은 마리킴에겐 영상 영화도 낯설지 않다. 지난해 중국 상하이 학고재에선 영화 패왕별희와 화양연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중국 옷을 아이돌 캐릭터 그림에 입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마리킴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다. 최근엔 차세대 ‘국민 여동생’ 김소현이 광고모델로 나선 메이크업 브랜드 페리페라와 디자인 콜라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예쁜 일도 한다. 히말라야 어린이들을 돕는 ‘마운틴차일드’에 꾸준히 후원도 하고 있다.

왜 마리킴은 눈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일까. 미성숙한 어린아이 같은 몸매에 커다란 눈을 가진 캐릭터 ‘아이돌’은 강렬하다 못해 가슴을 파고든다.

“인간의 장기 중에 유일하게 외부에 노출돼 있는 것이 눈이지요. 외부에 열려져 있다는 얘기죠. 우주에 있는 웜홀처럼 눈은 인체의 겉과 속을 이어주는 웜홀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요즘 자신의 작품에 우주의 내네러티브를 입히고 있다. 창세기-현재-미래의 3개 시리즈로 구성했다. 창세기에선 아이돌이 탄생하지만 개성이 없이 단순 복제되는 상태를 보여준다. 현재에선 아이돌은 다양한 개성을 갖게 되고 복제되다가, 미래에 이르면 각자의 목소리를 지닌 아이돌들이 생겨나면서 개성과 개성 간 충돌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해진 지구를 탈출해 광활한 우주로 떠나게 된다. 인류의 먼 과거와 앞날을 은유하는 듯하다.

2월 24일까지 서울 학고재에서 열리는 마리킴의 전시 제목이 ‘SETI(외계 지적생명체 탐사)’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전시제목으로 붙인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외계지적생명체를 찾는 작업을 또 다른 나를 찾는 작업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같은 맥락에서 아이돌은 또 다른 나라 할 수 있지요.”

그의 아이돌은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가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돼 나름의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생명이 지구에서 독립적으로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유기물의 형태든 그 보다 더 복잡한 형태든 지구 밖으로부터 들어온 물질들로부터 생명이 태동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물질들은 모두 우주공간에서 만들어졌다는 얘기죠.”

물질의 기원은 빅뱅 직후 우주 공간 속에서 만들어진 물질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명의 기원이 우주 공간이고 별의 내부인 셈이다. 우주 속에 흩어진 물질들은 그 기원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어느 별 옆 행성에 외계지적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그들도 우리와 같이 그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을 겁니다. 모든 생명체가 어떤 원형 물질의 복제품일 수 있는 거지요.”

예술도 어떤 대상의 복제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그는 예술의 원형과 우주생명의 원형을 등치시키고 있다. 나름의 예술론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머잖은 미래, 제 자신을 복제할 수 있다면 다양한 버전의 저를 만들고 싶어요.” 천문학자인 이명현씨도 마리킴 작품의 팬이다. 아이돌 그림의 복제 과정에서 하나하나 나름의 의미를 창출하면서 생명력을 부여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느날부터인가 그 복제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들이 마리킴을 넘어섰을 것이라 했다. 자신이 창조했지만 자신을 벗어난 창작물에 대한 낯섬에 작가는 다시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작가는 그래서 외롭다. 마리킴도 예외 일 수 없다.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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