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있는 문화 대한 열망 표출 한국 대중문화의 최고 황금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1980년대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의 시대 하면 소비문화, 신세대문화가 본격 등장하는 1990년대를 꼽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전방위에 걸쳐 확산되고, 질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던 시대는 1980년대가 아닐까 싶다.
주지하듯이 1980년대는 정치적 민주화를 위한 이념의 시대, 운동의 시대이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고 많은 아픔과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그러한 억압과 저항의 시절 이면에는 새로운 문화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대중가요에서는 서라벌레코드, 지구레코드, 서울음반 등 탄탄한 시장경쟁력을 갖춘 음반사들이 좋은 가수를 길러냈고, 영화계 역시 정치적 표현의 한계에도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길소뜸’, ‘만다라’ 등 많은 문제작을 만들었다. 1982년에는 프로야구, 이듬해 1983년에는 프로축구가 정식 출범했다. 1980년에 컬러TV 방송이 열렸고, 드라마 ‘모래시계’, ‘사랑과 진실’, 오락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유머 일번지’가 히트를 쳤다. 1986년에는 아시안게임,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올림픽이 열린 그 다음해인 1989년에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이루어졌다. 물론 많은 검열과 통제가 있었지만, 1980년대는 정치적 민주화의 격동기를 안고 문화적 자유화가 이루어진 시대였다. 1980년대는 대량 소비문화가 본격화된 1990년대를 예비하는 한국 문화자본의 원시적 축적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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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평론가 |
그런 점에서 1980년대 대중문화가 최근 주목받는 것은 단지 복고문화의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1980년대 추억의 가요들은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완성도 높은 곡들이다. ‘응답하라 1988’은 요즘 청소년 사이에 인기가 높다고 한다. 특히 중학생들은 이문세의 ‘소녀’,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을 마치 지금 유행가처럼 따라 부르곤 한다. 이문세의 ‘소녀’를 리메이크한 밴드 ‘혁오’의 보컬 오혁의 동명의 노래는 오랫 동안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다. ‘복면가왕’, ‘불타는 청춘’과 같은 오락 프로그램에 1980년대의 청춘스타들이 소환되는 것도 복고문화 열풍의 단순 반복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1980년대 대중문화의 귀환은 어떤 점에서 지금 대중문화의 기계적 식상함에 대한 대중적 반작용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멜로디가 배제되고, 샘플링, 자극적 비트, 랩이 지배하여 도대체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는 아이돌 가수의 천편일률적인 노래에 인내심을 잃은 대중의 감성적 반격이랄까. 감상하고 따라 하기 좋은 멜로디가 사라진 시대, 이야기가 없고 수다만 많고, 정서는 없고 감정만 과잉된 작금의 시대에 1980년대 대중문화의 귀환은 진정성 있는 문화의 서사를 원하는 대중의 강렬한 요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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