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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부모의 집은 작아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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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28 21:11:27 수정 : 2015-10-28 23: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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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시집 장가 보내고 나면 우린 시골에 작은 집 한 채 얻어 조용히 살 거야.”

엄마는 곧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두 분만 살기엔 집이 넓어 청소하는 데 품만 많이 들 거라며 군걱정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모님도 찾아뵐 겸 여행도 할 겸 이왕이면 제주도 가서 사시라”며 철없는 말을 내뱉곤 했다. 아마도 그땐 내가 부모 곁을 떠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얼마 전 엄마의 ‘노후계획’은 현실이 됐다.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반절만 이뤄지긴 했지만…. 오빠는 인사발령이 나 지방에 터를 잡았고, 나는 결혼을 했다. 전부 몇 달 새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기다렸다는듯 집을 팔아치웠다.

새집으로 이사 가는 날. 이제 남의 집 사람이 된 나는 빈손이 겸연쩍어 화장지 몇 통을 사들고 친정을 찾았다. 집은 엄마의 바람대로 이전보다 열 평 남짓 작았지만 환갑을 넘긴 부모님이 쓸고 닦는 모습을 보니 버겁도록 넓어보였다. 뭐라도 도와볼까 어설픈 모양새로 짐을 날라댔다. 하지만 엄마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 얼른 너네 집에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결국 나는 자장면 한 그릇만 비우고 친정을 나서야 했다.

‘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한 비감이 밀려왔다. 그 집은 두 분의 삼십여 년 결혼생활의 전부였다. 결혼생활 절반을 쏟아부어 서울 촌동네 한구석에 집을 마련했고, 나머지 절반 동안 그곳에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뒷바라지했다.

때론 내키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밥벌이가 비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자식들을 지키려면 당신들의 방패도 커져야 했기에 두 분은 그토록 악착같이 살았다.

권이선 국제부 기자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앞으로 나는 차츰차츰 집을 넓혀갈 일만 남았고, 아마도 부모님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빠가 딸을 시집보낸 뒤 한동안 공허함에 가슴앓이를 했다는 말을 최근에야 들었다. 자식들이 떠난 빈 공간을 하루빨리 메우고 싶어서 정신없이 이사를 하신 걸까. 물론 그 와중에도 언제든 찾아와 쉬어 가라며 좁아진 집 한켠에 여전히 내 물건을 예전 모습 그대로 놓아뒀다.

세상을 구하고도 어둠 속에 숨어버리는 고독한 영웅들…. 기사로 보던 쓸쓸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모습이 우리 부모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서글퍼졌다.

올 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와 따로 사는 자녀들은 한 달 평균 1.6회 부모와 왕래한다고 한다. 나도 이사 날 이후 아직 친정에 발을 들인 적이 없다. 내가 앞으로 그 집에 머물게 될 날은 며칠이나 될까, 아니 몇 시간일까 헤아려 본다. 날이 쌀쌀해졌다. 부모님 집이 더 좁아지기 전에 당장 이번 주말 부모님을 찾아봬야겠다.

권이선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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