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그는 일찍부터 캔버스에 흙을 바르는 밑바탕 작업을 해왔다. 흙바탕 위에 유화를 올리는 방식의 작업이다. 흙바탕이 유화를 강력히 빨아들인다. 성형된 기물에 유약을 듬뿍 입혀 작업하는 분청기법과 자연스럽게 접목이 됐다.
“10년 전 분청자기 전시를 보게 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유약에 덤벙 집어넣거나 철사나 붓 자국을 그대로 승화시켜낸 모습에 매료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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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기법을 연상시키는 일필휘지로 그려낸 작품 ‘풍경’. |
“중국 청대의 화가 정섭도 눈 속의 대나무(眼中之竹), 가슴속의 대나무(胸中之竹), 손 안의 대나무(手中之竹)라는 세 단계로 그림 그리는 과정을 설명했어요. 저도 눈으로 본 것을 가슴속에 담아두었다가 손으로 일필휘지하는 것이지요. 구상은 실제로 그리는 과정에서 미리 눈으로 보고, 가슴속에 생각했던 그것과는 차이가 발생하지요. 본 대로 그리고, 구상했던 대로 그리는 단계를 벗어나 실제로 그리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예술적 감흥을 자아내는 즉발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이 작가의 개별성이자 예술적 보편성이지요.”
그는 매화, 인물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그림은 두터운 오일물감으로 덧칠하는 유화와는 차이가 있다. 그의 그림이 동양적인 정취가 강한 것은 단순히 소재 때문이 아니라 제작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문인적인 취향도 한몫하고 있다.
“저는 18세기 문인화가 이인상 같은 조선화가들을 좋아합니다. 실학자였던 이덕무 같은 선비의 일대기도 읽었습니다. 분청자기의 여백의 미 같은 풍모를 지닌 인물들입니다.”
한시를 좋아하는 그는 대학원 시험에서 제2외국어를 한문으로 선택할 정도로 고전에도 관심이 많다. 고문진보도 술술 읽어내려갈 정도다. 경주가 고향인 그에게 전통은 몸에 밴 것이다. 11∼25일 이화익갤러리에서 그의 최근작을 볼 수 있다. (02)730-7817.
화가에게 그림은 삶의 평형을 유지시켜 주는 지렛대라고 말하는 차규선 작가. 그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매일 반복적으로 밥을 먹고 잠을 자듯 생활의 일부이며 삶의 전부다.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실컷 그리며 조금씩 변해 가는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항상 노력하지만, 어느날은 비가 오고 어느날은 해가 나듯 의지와 상관없이 좋고 나쁘기를 반복한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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