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보안을 생명처럼 중시해야 할 군 간부들이 기밀을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버젓이 올리고 ‘인증’까지 하면서 군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인터넷의 특성상 정보의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른데다 통제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기밀 유출은 국가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특히 지난달 북한의 지뢰 및 포격 도발 사태 당시 스마트폰을 이용해 군사기밀을 온라인에 무단으로 올려 적발된 군 간부가 해병대 A 중위 외에 2명이 더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군의 보안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北 포격도발 와중에도 인터넷 ‘인증’
지난달 북한의 포격도발 사태 때 북한군 관련 내부 정보를 유출한 간부가 국군기무사령부의 조사를 받는 해병대 A 중위 외에 2명이 더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 관계자는 8일 “공군 B 중위가 지난달 22일 공군 중앙방공통제소(MCRC) 상황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B 중위는 북한 무인정찰기로 추정되는 미확인 비행체가 비무장지대(DMZ) 상공에 출현했을 때 MCRC에 포착된 정보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게시판에 글로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의 포격도발 당일인 지난달 20일에는 육군 최전방 부대 소속 C 하사가 “북한군 도발 징후가 있으니 대기하라”는 영내 방송 내용을 일베 게시판에 올려 기무사 조사를 받았다. C 하사가 올린 글은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의 속보보다 20여분이 빨랐다.
미확인 비행체가 DMZ 상공에 떴을 때 육군 전술체계망(ATCIS) 화면을 휴대전화로 찍어 유출한 해병대 A 중위는 불구속 상태로 기무사 조사를 받고 있으며 조만간 군 검찰에 송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A 중위는 ATCIS 화면 사진을 민간인 친구에게 전송했으며 민간인 친구는 이를 일베 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군에서 비상 상황이 걸리면 언론보다 ‘일베’게시판부터 먼저 봐야겠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아 군 초급간부들의 보안의식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軍 ‘SNS 가이드라인’ 배포 “기밀누설 엄금”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군사기밀이 계속 유포되자 군 당국은 ‘군 장병을 위한 SNS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장병들에게 배포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SNS 가이드라인은 장병들이 자주 이용하는 SNS인 페이스북, 밴드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들을 규정했다. 이와 더불어 SNS 사용 과정에서 해킹 등을 방지하는데 필요한 보안사항,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처리 절차, SNS 활용 행동강령 등을 함께 소개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오픈 프로필’을 작성할 때 장병들은 군 관련 정보를 최소한으로만 기입하며 공개 범위도 ‘특정인에게만 공개’로 설정해야 한다. 군과 관련한 위치정보의 노출을 막기 위해 페이스북의 ‘체크인’ 기능은 사용해서는 안된다. 프라이버시 설정도 최소화해 자신도 모르게 정보가 유출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사진 역시 영내 시설 등 군사보안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올릴 수 없으며,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는 게시물도 올릴 수 없다.
![]() |
장병들이 병영 내에 마련된 도서관 열람실에서 독서를 즐기고 있다. 사진=육군 |
밴드의 경우 가이드라인에서는 “가까운 인맥끼리의 소규모 서비스라는 특성상 더욱 자세하고 민감한 정보를 공유할 위험이 높다”며 “밴드에서 공유되는 게시물들은 다른 SNS에서 공유하는 정보보다 유출됐을 경우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베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해서는 “무심코 쓴 글이 빠른 시간 안에 전파될 수 있고, 익명성에 의한 책임의식 약화, 군인 신분을 공개했을 때의 문제점 등을 감안해 모든 행동에 신중을 기하라”고 당부했다.
◆ 가이드라인보다 보안의식 강화 우선돼야
국방부가 SNS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장병들에게 배포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군 간부들의 보안의식을 높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가이드라인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초급간부들의 경우 온라인에 익숙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군 관련 기밀을 게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 비밀 엄수 위반 건수는 2012년 2470건, 2013년 2520건, 2014년 3090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적발된 비밀 엄수 위반 건수는 2189건에 달했다. 군사비밀 누설 적발 사례도 2012년 17건, 2013년 18건, 2014년 25건, 올해 상반기 8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보안 위반을 저지른 사람은 대부분 병사였지만 장교가 위반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전체 보안위반 적발 사례 3090건 가운데 병사의 보안 위반은 2702건, 영관·위관급 장교의 보안 위반은 259건이었다.
이는 초급간부들의 ‘정보력 과시’와 더불어 부대 지휘관들의 관리 소홀, SNS에 의한 군사기밀 유통의 일상화 등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편리하다’는 이유로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통해 부대 업무를 처리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
군에서 사용하는 각종 통신장비들(자료사진) |
국방부 역시 간부들의 의식 개선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하에 처벌과 교육을 강화할 발침이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군 간부라면 보안의식이 철저해야 한다. 보안에 위배된 부분이 있다면 (당사자는) 아주 엄격하게 처벌될 것”이라면서 “의식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온라인과 SNS에 익숙한 신세대 장병들의 일탈행위를 군이 저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아 기밀유출을 둘러싼 군 당국의 고민은 계속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