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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말’ 외 ‘그안에 담긴 다른 뜻’ 표현 도구로도 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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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9-06 21:51:31 수정 : 2015-09-06 23: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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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77〉 사족(蛇足)의 의의 우주기지 섬 전남 고흥 나로도 곁 아담한 섬 애도에서 뚱딴지 군락(群落)을 보며 ‘참 뚱딴지 같은 이름’이라는 생각을 했다. 돼지감자다. 자라는 모양은 좀 엉성하지만 추석 무렵 크고 샛노란 꽃이 흐드러지면 주위 분위기를 다 휘잡는다. 주민들이 자랑하는 화사한 야생화 밭 한편에 ‘나도 예쁜 꽃 피울 줄 안다고!’ 하듯 서 있었다. 좋은 쑥(애·艾)으로도 유명해서 艾島다.

‘뚱뚱한 단지’래서 뚱딴지라는 이도 있고, 잎과 꽃이 감자 같지 않은데 ‘뚱딴지같이’ 감자 닮은 뿌리가 달렸대서 뚱딴지라 부른다는 설도 있으나 궁리해 봐도 속 시원한 답은 아닌 듯하다. 외국에서 뿌리를 사료로 쓰는 식물인데 이제 이 산야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뚱딴지 군락 있는 쑥과 야생화의 섬 애도(艾島)에서 바라본 나로도항. 어업기지이면서 여수∼거문도 뱃길의 기착지 관광항구다. 우주기지는 저 산 뒤편에 있다.
‘국화과 여러해살이풀’ 뚱딴지보다는 ‘엉뚱하고 완고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뚱딴지가 더 유명하다. 뚱딴지처럼 뱀의 다리 즉 사족(蛇足) 이야기가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 ‘사족’은 이 연재물 ‘만사설문’의 작은 상자 글 제목이기도 하다. 뚱딴지처럼 돌연 뱀 다리 이야기를 불러온 기사(YTN, 9월 4일)를 인용한다.

“뱀 다리 ‘사족’은 쓸데없는 일 또는 군더더기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래전에는 뱀도 다리가 있었습니다… 미국 연구팀이 다리가 네 개 달린 뱀 화석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브라질에서 나온 이 화석의 연대는 1억1000만년 전으로 추정되며, 네 발이라는 점이 특별한 뱀의 화석입니다.”(데이브 마틸 미 포츠머스대 교수) “몸길이 20cm의 이 뱀은 손이 달렸으며, 손보다 좀 긴 발이 달렸습니다. 이 손발은 뱀이 걷기를 중단하고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도… 먹잇감을 붙잡거나 교미할 때 상대방을 움켜잡는 데 유용했을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 살던 에덴동산의 뱀은 인간을 유혹하는 (악한) 존재로서의 상징이다. 동양(중국)의 뱀은 그 다리(발)의 부재(不在)가 비유법의 출발점이다. 동서양의 차이인가.
뱀은 다리가 없다. 사족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흔히 말과 글에 오른다. 그 바탕에는 옛이야기가 있다. 즉 고사성어(故事成語)인 것이다. 4글자(단어)로 쓰여 ‘사자성어’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이 사족 역시 사자성어다. 화사첨족(?蛇添足)의 줄임말이다.

뱀을 그리고 나서 (있지도 않은) 발을 덧그렸다는 뜻이다. ‘쓸데없는 군짓을 하여 도리어 잘못되게 함을 이르는 말’이 사전의 풀이이다. 중국 은(殷)과 주(周)나라에 이어 진시황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일들을 적은 기록인 ‘전국책’(戰國策)에 나온 이야기가 그 바탕이다.

초나라 소양(昭陽)이 위나라를 함락하고 나서 제나라를 치려 하자 제의 외교관인 진진(陳軫)이 찾아와 자기 나라(제)를 치는 것은 당신(소양)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설득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동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소양은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뱀을 먼저 그린 사람이 맛난 술잔을 차지하기로 내기를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뱀의 발까지 다 그렸다’며 술을 마시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그림을 끝내고 ‘뱀엔 발이 없는데 발을 그렸으니 무효’라며 술잔을 빼앗아 마셔버렸답니다. 이미 죄다 얻은 장군이 또 제나라를 치려다 혹 패하면 뱀 다리 그린 이처럼 모두 잃게 되는 것이지요.”

뚱딴지의 잎과 꽃. 추석 무렵에 주위의 분위기를 환하게 하는 들꽃이다. 감자 비슷한 뚱뚱한 뿌리는 약으로도 쓴다.
군더더기 군소리 군말 췌언(贅言) 장광설(長廣舌) 따위가 사족의 관련어로 제시되어 있다. 다리가 없다는 점 때문에 ‘뱀 다리’에 붙은 여러 (비유적인) 뜻이다. 그런데 뱀에 엄연히 다리가 있었다니 화제가 될 법하다. 사족도 ‘뚱딴지 같은 말’의 뜻인데, ‘실은 사족이 있었다’ 하니 이 또한 뚱딴지같지 아니한가?

함의(含意)라는 말이 있다. 뜻(意)을 머금었다(含)는 이 말은 ‘밖으로 드러난 것 말고 그 안에 담긴 (또 다른) 뜻’이라는 의미다. 사족이 ‘쓸데없는 말’이라는 밖으로 드러난 뜻 말고, ‘그 안에 담긴 다른 뜻’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도 쓰이는 까닭에 이 말의 생명력은 지속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사족’의 함의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족 같지만’ 하고 시작하는 말에는 대개 그 말하는 이의 뜻밖의 본심(本心)이 숨어있을 수 있다. 이를 주의 깊게 여기지 않으면 그 협상(대화)에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충고도 가능하겠다. 사족의 이런 여러 의미를 모른 채 단지 사전에서 일러주는 ‘쓸데없는 말’이라는 뜻으로만 알고 쓰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말과 글’에 관한 공부가 늘 필요한 이유다. 말이 보듬은 역사성이 생성(生成)하는 이런 다양한 뜻이 또한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담지(擔持)하여 후세에 전하는 연모다. 이런 뜻을 잊으면 우리 사회의 생각이 어언 ‘뚱딴지’가 될 수 있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 사족(蛇足)

그 기사에 댓글 많이 달렸다. 제일 많은 것은 이 ‘발견’이 진화론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니다 세상은 지금 이대로 창조된 것이니 네 발 달린 뱀이란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진화론(進化論)과 창조론(創造論)의 좀 과격한 벋섬이다. 역사 오랜 논쟁으로 종교와도 관련 깊은 주제다.

‘사족을 못 쓴다’는 말로 이해하고 논리를 펴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말글의 상당 부분이 뜻글자인 한자(漢字)를 보듬은 소리글자인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터다. 이때 사족은 四足 즉 두 팔과 두 다리 사지(四肢)다. 사지를 못 움직일 정도로 (기분) 좋을 때 쓰인다. ‘뱀 다리’ 사지를 ‘두 팔과 두 다리’ 사지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의당 소통에 틈이 생길 터다.

역사책의 용어 사족(士族)에 관해 묻는 댓글도 있었다. 이 사족과 그 사족은 같은가, 다른가 하는 질문이었다. 선비 士, 겨레 族의 합체로 ‘문벌 좋은 집안, 또는 그 자손’의 뜻이다. 어린 세대의 이런 헷갈림을 짐작도 못하는 기성세대들이 많다.

읽을 때 주의할 점, 장단(長短) 즉 길고 짧음을 챙겨야 정확한 발음이다. 뱀 다리 사족은 짧게 (사족), 두 팔 두 다리 사족과 선비집안 사족은 길게 (사:족)이다.

사족 같은 얘기지만, 이 장단음은 한자의 성조(聲調)인 평상거입(平上0去入)의 사성(四聲)이 그 기준이다. ‘재야’(在野) 국어학자 최한룡 선생의 설명이다. 평성과 입성은 짧게, 상성과 거성은 길게 소리 내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이 사성의 표시가 있는 것이라야 제대로 된 (쓸 만한) 한자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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