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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아베의 '정치적 DNA' … 역사는 반복 될까

입력 : 2015-07-16 18:56:01 수정 : 2015-07-16 23: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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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부의 ‘독선정치’ 되밟는 아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품에 안겨 찍은 사진. 왼쪽은 형인 히로노부 미쓰비시 상사 패키징 사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집념이 무섭다.

15, 16일 아베 총리가 보여준 정치적 행태는 집단 자위권을 포함한 안보 관련 법제 개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다. 의회민주주의 기본 절차나 국민의 반대 여론, 국제 사회의 우려 등은 철저히 외면한 채 힘으로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베의 폭주’로 표현할 만하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평화헌법의 틀을 깨고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처럼 강한 군사력을 갖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전 총리의 ‘정치적 DNA’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16일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 안보 관련 법안이 통과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두번째)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세번째), 이시바 시게루 지방창생담당상(〃 첫 번째)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
기시 전 총리는 2차대전 A급 전범이었으나 겨우 사형을 면했다. 그는 옥중에서도 일본의 침략을 인정하지 않는 취지의 글을 남겼을 만큼 위험한 사상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반공 전선 구축을 중심에 둔 미국의 대일 정책 아래 1948년 석방됐고 이후 1957년 총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보통국가로 가는 것이 필생의 업이었다. 스스로 “죽기 전 새 헌법이 만들어지는 걸 이 몸으로 느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재임 중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손을 댔다. 평화헌법 틀을 깬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다시 전쟁에 관여할 최소한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야당과 언론, 시민사회가 거세게 반발했지만 기시는 1960년 5월 중의원에서 심의도 거치지 않고 이 조약의 비준안을 단독 처리해 버렸다. 일본 전역에서 반발 시위가 이어지며 정국이 마비되자 그는 같은 해 7월15일 사퇴했다.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이 집단자위권 법제화 강행 처리 수순을 밟기 시작한 15일 도쿄 국회의사당 밖에 모인 시민들이 “전쟁법안 강행처리를 반대한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채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
아베 총리는 평소 기시 전 총리를 자신의 정치적 뿌리, 스승이라고 말해왔다. 총리가 되고 나서도 아베 총리는 “내 할아버지(기시 전 총리)는 (미·일안보조약 개정이) 50년이 지나면 반드시 이해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25년, 30년 만에 지지가 다수가 됐다”고 자평하고 다녔다. 아베 총리는 특히 올 1월11일 기시 전 총리의 묘소를 참배하며 “종전 70주년에 걸맞은 한 해를 만들고 싶다”며 개헌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묘하게도 아베 총리가 중의원 특별위원회에서 집단자위권 법안을 날치기 처리한 15일은 65년 전 기시가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대한 국민 반발 속에 사퇴한 날이다. 일본 야당들은 “그(기시의) 억울함을 풀려는 동기로 표결 날짜를 정한 것인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외조부의 꿈을 완성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현실은 국민적 반발 속에 외조부처럼 쓸쓸히 퇴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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