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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명화의 두 얼굴: 최고이자 최악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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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20 13:57:00 수정 : 2015-12-05 14: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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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은 여러 모습을 지닌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누구에게는 좋아도 또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준을 적용시키느냐에 따라 한 영화가 ‘최고’의 영화이자, ‘최악’의 영화가 될 수 있다. 몇 차례 얘기했던 바로 ‘시선’, ‘시점’,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영화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보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용 카메라와 영사기 등을 개발한 토마스 에디슨이나 뤼미에르 형제가 자신들의 발명품 성능을 인증하기 위해 제작한 초기영화들을 비롯해서.

그중 ‘국가의 탄생’(감독 D. W. 그리피스, 1915)과 ‘재즈 싱어’(감독 앨런 크로슬랜드, 1927)는 각각 ‘본격적인 현대 영화’와 ‘최초의 유성 영화’로 평가되는 영화역사적으로 중요한 영화들이다. 



‘국가의 탄생’(사진)은 한 장면을 멀리서 찍은 ‘롱 쇼트’, 조금 다다가서 찍은 ‘미디움 쇼트’, ‘가까이에서 찍은 ’클로즈 업‘ 식으로 촬영하여 편집해 보여준 영화로서 단순히 한 장면을 한 쇼트로 보여주던 기존 영화들과는 기술적으로, 미학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영화였다. 교차편집을 세련되게 사용하고, 쇼트의 길이를 조정해 관객들의 긴장감을 높였다 낮추기도 했던 영화로서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리피스 감독의 대표작이다.

‘재즈 싱어’는 상업 장편영화로는 세계 최초로 녹음을 시도한 부분 유성영화로서 주인공 재키가 노래하는 장면들이 동시녹음 되어 노래와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부도 위기를 겼던 워너브라더스 영화사를 살려낸 영화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 역사적으로 기술적인 큰 변화를 주도한 두 영화는 인종차별적인 영화로 비판받기도 한다. 두 영화는 형식적으로 큰 발전을 이뤄냈고, 흥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지만, 내용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한 ‘국가의 탄생’에서 주인공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은 바로 ‘무식하고, 폭력적인(?)’ 흑인들이고, 이들을 무찌르고 가족을 구하는 사람들은 ‘정의로운(?) KKK단’ 소속인 백인들이다.

영화 속에서 그나마 대사가 있는 조연급 흑인 캐릭터들은 백인 배우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등장하는데, 마음씨 착했던 백인 주인들을 배신하고,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려 하는 등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당시에도 이 영화의 인종차별주의에 항의하는 항의들이 있었고, 상영이 금지되는 곳도 있었다.  

‘재즈 싱어’는 주인공 재키의 위기 상황이 인종차별적으로 그려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어린 시절 가수가 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한 재키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브로드웨이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무대에 설지, 유태교 의식에 설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집안 전통을 따라 5대째 유태교 칸토(cantor: 성가대 독창자)인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병석에 눕게 되면서, 재키가 아버지를 대신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재즈 싱어'



그런데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재키의 ‘검은 칠을 한 흑인’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키가 공연을 위해 한 흑인 분장은 영화나 만화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두 영화는 전형적인 인종차별적이면서 백인 중심적인 사고를 담아낸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주조연급으로는 흑인 배우를 기용하지 않던 당시 할리우드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남북전쟁이나 흑인 차별 이슈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의 한국 관객들은 이 영화들을 보면서 어떤 비하나 왜곡이 이뤄진 것인지 눈치를 챌 수도, 못 챌 수도 있다. 그리고 언짢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얼마 전 개봉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감독 조지 밀러, 2015)는 CG가 절제된 SF영화이면서 액션영화이다. 그리고 기존 이런 장르 영화에서 흔히 보던 여성 캐릭터와는 다른 캐릭터와 내러티브가 등장하는 영화기도 하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관객들도 있다. 전형적으로 뻔히 등장했던 몇 종류 안 되는 여성 캐릭터에 익숙해져 있다면 낯설 수 있다. 거기다 영화 밖 현실과 개인적 경험, 편견들이 보태지면서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를 통해 인종, 성별, 지역, 시대뿐만 아니라 직업 등 다양한 논란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다.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미인의 기준이 바뀌듯, 모든 기준은 바뀌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서 변화를 이끄는 사람도, 좇아가는 사람도, 거부하는 사람도 공존할 테니 갈등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갈등은 변화의 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당대 최고의 영화도 다른 관점에서는 최악의 영화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평가하는 다양한 관점만큼이나 영화가 담아내는 세상과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애초에 영화는 영원불변의 단일한 결론이 날 수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영화 한 편에 대한 '옳고그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습관이 되어 버린 좁은 시선을 조금은 넓혀보자는 얘기다. 

송영애 서일대 영화방송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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