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을 하다 돈을 다 잃으면 돈을 딴 사람이나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리는 경우가 있다. 도박에서 진 빚을 갚을 의무가 있는가. 없다. 도박자금 대여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계약으로서 무효다. 그리고 무효인 계약에 의해 수령한 도박자금은 부당이득에 해당한다. 그러나 도박자금 대여는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므로, 대여자는 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도박 빚을 갚았다면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 도박 빚을 갚는 것도 불법원인급여이기 때문이다.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집의 소유권을 넘겨준 경우도 마찬가지다. 원소유자는 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수 없다.
그러면 사기도박의 마수에 걸려 자기 집을 넘겨준 경우는 어떤가. 실제로 이런 사건이 있었다. 바둑을 무척 좋아한 중학교 선생이 있었다. 그런데 선생은 그만 타짜에게 걸려 그가 고수인 줄 모르고 내기바둑을 뒀다. 당연히 선생은 계속 지게 됐고, 그때마다 타짜한테서 도박 빚을 지게 돼 빚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선생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타짜는 학교에까지 찾아와 빚을 갚으라고 협박과 공갈을 일삼았다.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면 해직당할까 두려워 선생은 타짜에게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주택의 등기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후로도 남은 빚 때문에 시달리다 사직하고 말았다. 선생은 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수 없는가. 또 선생은 도박죄로 처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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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
사기도박에 걸린 선생이 도박죄로 처벌되지 않는다면, 타짜에게 집을 넘겨준 것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민법에서 불법은 반드시 범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선생은 타짜에게 넘겨 준 집을 되찾을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법에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기바둑처럼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여자의 그것보다 현저히 크고 그에 비하면 급여자의 불법성은 미약한 경우’에도 급여자의 반환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공평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봤다. 선생의 불법은 타짜의 불법에 비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선생은 집을 되찾을 수 있었다. 법이란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임을 새삼 일깨워 주는 사례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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