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에 문제가 생긴 건 20년 전쯤이었다.
“감기를 심하게 앓았어요. 약을 먹고 열은 내렸는데, 눈이 심하게 침침하더라고요. 통증이 없어서 병원도 안 갔죠. 노안이 온 건가 했지요.”
나중에야 시신경이 죽어가는 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눈을 완전히 앗아간 것은 7, 8년 전쯤 앓은 뇌경색이었다. 몸의 반쪽이 마비되는 증상도 보였다. 남편 이창규(72)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세상을 버리다시피 했었다”고 전했다. 무기력하게 잠만 잤고, 우울증도 찾아왔다. 할머니는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게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할머니를 다시 세상으로 이끌어 낸 건 음악이었다. 이맘때 본격적으로 장구를 배웠다. 장구를 배우면서 몸을 움직였고, 그것이 마비를 푸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단소를 배우기 시작한 건 2년 전이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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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순 할머니가 지난 26일 부산 중앙동 비욘드 개러지에서 열린 2015 세계예술교육주간 개막식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시력을 잃은 할머니에게 음악은 세상으로 다시 이끈 빛이었다. 이지스커뮤니케이션즈 제공 |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시각장애인들에게 단소를 가르치는 예술강사 이진옥씨의 말에 따르면 처음 단소를 배울 때 소리를 내는 것은 젊은 사람들도 쉽지 않다. 폐활량이 적은 70대의 노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볼 수 없기 때문에 교육 과정에서 큰 불편을 겪는 건 당연하다. 강사의 몸을 직접 만져 자세와 손가락의 위치를 익히고, 녹음된 노래를 수없이 들어 곡을 외워야 한다. 이런 이유들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이씨는 “할머니는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며 “어설프게 배우는 것도 싫어해서 항상 정확하게 가르쳐 달라고 한다. 재미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단소 연주를 통해 성취감을 원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일주일에 세번 경기도 고양의 집을 나선다. 악기를 배우고, 노인대학에 가는 길이다. 그것이 그렇게 즐겁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갈 데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나가니까 씻기도 하고 단장도 하게 되잖아요.”
할아버지가 한 마디 거들고는 껄껄 웃었다. “이 사람이 단소를 배우고 나니 오히려 내가 살 판이 났어요.” 건강한 삶을 되찾은 할머니의 변화가 가장 반가운 건 할아버지였다.

“음악을 한다는 게 너무 즐거워요. (시력을 잃었을 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줄 알았어요.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부산=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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