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은 '태조 왕건'을 비롯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무신' '천추태후' '신돈' '용의 눈물' '정도전' '신의' 등이다. 이중 '신의'는 판타지 성격이 강하고, '용의눈물' '정도전'은 여말선초 왕조교체기를 다뤘기에 고려시대 사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많지않은 고려시대 사극 중에서 강한 개성과 색깔을 가진 사극이다. 이 작품의 시대 배경은 태조 왕건(남경읍 분)이 3한(고려, 백제, 신라)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후 고려 초기다.
왕건은 통일된 3한 고려의 주인이 됐지만 대업을 이루기 위해 많은 지방 호족들과 혼인 동맹을 맺었다. 이 혼인 동맹은 왕건이 살아있을 때는 단단한 결속력을 지녔지만 왕건 사후에는 극심한 후계자 전쟁이 치러졌다.
왕건의 첫째 부인인 신혜황후 유씨는 후사가 없었기에 나주 출신 장화황후 오씨의 아들 무가 2대 혜종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혜종은 평주(지금의 평안도) 지역 호족들이나 신라계 호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즉위한지 얼마 안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혜종의 뒤를 이어 고려 3대 황제로 즉위한 정종 요(류승수 분)는 충주 출신 신명순성황후 유씨의 큰 아들이다. 그 역시 호족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즉위한 황제였기 때문에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정종의 즉위 기간도 길지 않았다.
왕건을 도와 고려 왕조를 창업한 공신들이 대부분 태자들의 외척이었기 때문에 황실의 권위보다는 어머니 가문의 안위를 더 챙겼다. 이는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도 잘 나타나는 장면이다.
허수아비에 가까웠던 혜종, 정종과는 달리 4대 황제 광종 소(장혁 분)는 형들과는 달랐다. 그는 어머니와 처가 가문의 대표라기 보다는 고려 황제의 존엄을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황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많은 개혁 정책을 실시했다.
광종의 광은 빛 광(光)자가 될 수 있고, 미칠 狂자가 될 수 있다. 광종은 고려의 기초를 닦은 황제로 역사의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중국에서 망명한 쌍기라는 학자를 통해 과거제를 도입했으며, 노비안검법으로 호족들에게 귀속된 노비들을 대거 해방시켰다.
또한 토지 개혁을 실시해 양민들에게 나눠주었다.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광종이 구축한 통치시스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광종의 개혁 정책은 백성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백성들에게 광종은 빛나는 황제일 것이다.
반면 광종은 호족과 공신들에겐 가혹했다. 과거제를 실시하고, 노비안검법과 토지개혁을 실시한건 호족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는 고려왕조의 통치시스템이 완성되긴했지만 목적은 호족의 힘을 빼앗아 황제의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었다.
당시 고려의 관료들은 가문의 후광으로 관직에 오른 음서제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능력은 물론 황제보다는 가문의 이익을 대변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국가가 인정한 제도에서 선발된 관료들은 음서제 출신들보다 실력과 충성도 면에서 달랐다.
또한 당시 노비들은 호족들의 재산 형성 및 고려의 3한 통일 과정에서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노비는 호족들의 재산이었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납세 의무가 면제됐다. 노비들이 양민으로 해방되면서 국가는 재정을 더욱 튼실히 할 수 있었다.
광종은 호족들의 힘을 빼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차근차근 황실의 위협이 되는 가문을 숙청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자신의 형제들까지 죽음으로 내몰았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이자 훗날 경종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 호족들에게 광종은 미친 황제였을 것이다.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고려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과 가장 미친 통치를 했던 광종의 이야기를 풀어낸 로맨틱퓨전사극이다. 신율(오연서 분)에게는 로맨틱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부인인 여원(이하늬 분)에게 차가운 왕소의 모습은 실제 광종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창용 기자 ent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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