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은 어제 “예산안 처리 날짜는 영구히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국회가 헌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지키겠느냐”면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12월2일까지 국회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헌법 규정을 밥 먹듯이 어겨 왔다. 블랙코미디였다. 정 의장 발언이 아니더라도, 법질서의 기본인 헌법의 명문규정까지 대놓고 짓밟는 국회의 꼴불견 관행은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국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예산안을 적법 처리해 새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어제 본회의에 올라간 정부예산안은 376조원 규모다. 그 돈은 원칙적으로 모두 혈세에서 나온다. 국민 허리를 휘게 하는 짐인 것이다. 국회는 현미경을 통해 낭비 요소를 짚어내고 허투루 쓰일 항목을 철저히 걸러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한 기색은 거의 없다. 여야는 9월 정기국회 초입부터 정쟁으로 소일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날림 심의를 자초한 결과다. 결국 여야가 정부 원안에서 감액하기로 합의한 것은 금액으로 따져 3조원 안팎이라고 한다. 낭비 요소가 원안의 1%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정부의 확장형 재정 청사진이 완벽에 가깝게 짜였다는 것인가. 아니면 국회 심의가 허술했다는 것인가. 전자의 경우로 볼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정부예산안마저 허수아비나 다름없으니 더 큰 문제다. 여야는 최종 합의점이 도출되면 정부 원안 대신에 수정동의안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하지만 그 실체는 현재로선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각 상임위원회에서 올라온 증액분 규모가 16조원에 달해 뭘 더하고 뺄지가 유동적인 탓이다. 여당은 이미 90% 이상 심사가 마무리됐다며 합의 도출을 자신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법이다. 여야는 심지어 협상이 깨질 경우에 대비해 각자 수정안을 다듬고 있다고 한다. 오늘 표 대결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경계할 것은 여야가 연장 심의를 통해 악수(惡手)를 두는 경우다. 가뜩이나 과잉 복지 프로그램으로 인해 중앙·지방 정부 재정이 곤란한 판국이다. 나라살림을 거덜낼 예산 악수는 제발 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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