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자선음악회 ‘가을밤, 사랑은 선율을 타고’ 무대.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하얀 가면으로 눈을 가린 남학생 21명이 입장했다. 이들은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고봉중고(서울소년원)에서 온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이다. 가출·절도 등으로 어두운 시간을 지나야 했던 학생들은 이날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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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왕시 고봉중고등학교 합창단 학생들이 7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서울아버지합창단이 연 자선음악회 ‘가을밤, 사랑은 선율을 타고’에서 열창하고 있다. 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학생들은 이날 눈을 가린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서울아버지합창단 제공 |
이 음악회는 서울아버지합창단이 마련한 무대였다. 서울아버지합창단은 16년 전 IMF 구제금융 사태 때 음악으로 희망을 주고 아버지들 스스로 힘을 얻기 위해 창단했다. 단원 대부분은 50·60대. 고봉중고와 인연은 2년 전부터 위문공연으로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정식 자매결연을 맺었다. 합창단원인 테너 박영일(63)씨는 “우리가 아이들의 부모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서기에 어머니뻘인 여성합창단을 섭외해서 위문공연에 함께 간다”며 “아이들이 우리를 보며 부모의 정을 떠올리고 감정이 북받친다”고 밝혔다.
1년에 두 번씩 소년들을 찾아간 아버지 합창단원들은 이번에 고봉중고와 합동 무대를 꾸미기로 결정했다. 마음대로 외출할 수 없는 소년들이 큰 무대를 경험하고 용기를 얻었으면 했다. 아버지들의 배려는 소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공연 뒤 만난 박민호(18·가명)군은 “짜릿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며 “어르신들이 많아서 더 편하게 공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보람(19·가명)군은 “이 공연을 계기로 잘 하고 싶어요. 솔직한 심정입니다”라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감격한 소년들은 자연스레 부모를 떠올렸다. 김민우(19·가명)군은 “어머니가 보시지 못해 아쉽다”며 “제가 나가면 그동안 속 썩이며 가슴에 박았던 못들 다 빼드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모 얘기가 나오자 학생들은 “저요, 저요” 하며 앞에 나섰다. 말미에는 다들 “사랑해요”를 덧붙였다.
“제가 사고를 많이 쳤는데…. 객석에 아버지가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죄송스러워요. 더 멋진 모습으로 뵙고 효자 될게요.”(박민호)
“‘유 레이즈 미 업’이 당신이 있기에 힘이 난다는 가사잖아요. 제가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는데 이제 부모님의 힘이 되는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정윤우·18·가명)
이날 공연에서는 이응빈(16)군이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을 독창했다. 이군은 고봉중고 시절 학교 선생님도 두 손 든 악동이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던 이군이 변한 계기는 합창단 입단이다. 일반 고교에 다니는 이군은 이제 테너로서 ‘제2의 파바로티’를 꿈꾸고 있다. 이군은 “노래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바뀐 건 인성”이라며 “옛날에는 화 나면 마음대로 하고 아무 목표가 없으니 막 나갔는데, 지금은 꿈이 있으니까 화 나도 한 번 더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봉중고에는 이군처럼 음악을 접한 뒤 바뀐 학생들이 여럿이다. 2011년 처음 합창단이 만들어졌을 때 얼굴을 못 들고 쭈뼛쭈뼛했던 학생들은 이제 서로 노래를 가르쳐주며 호텔리어, 싱어송라이터, 종합격투기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합창단을 이끄는 손승혁 음악교사는 “우리 학교에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슬픔을 겪으며 자란 아이들이 많은데, 무대에서 박수 받는 경험 자체가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자아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고 밝혔다.
변한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아버지 세대인 박영일 테너는 “불량학생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기 쉽지만 막상 고봉중고 아이들을 보면 내 자식들하고 똑같다”고 전했다. 박 테너는 이어 “우리 애들과 비슷한 아이들을 보며 주변 아이들 역시 한순간 분을 못 참거나 마음이 틀어지면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 어른들이 먼저 깨우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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