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킬러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작품도 있다. 뤼크 베송 감독의 ‘레옹’이 그렇다. 킬러 레옹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일할 때는 누구보다도 철두철미하고 냉혹하다. 하지만 부패 경찰에게 가족을 몰살당한 어린 소녀를 만나 우정을 나누면서 변화한다. 영화에서 그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인물도 묘사된다.
우리나라에도 청부살인을 다룬 영화가 적지 않다. 나홍진 감독의 ‘황해’는 색다르다. 빚에 쪼들리는 중국 동포가 청부살인에 얽혀드는 얘기를 다뤘다. 중국 연변에 사는 조선족 구남은 택시기사다. 하지만 돈을 버는 족족 빚쟁이에게 뺏긴다. 한국으로 돈을 벌러간 아내는 감감무소식이다. 조선족 청부살인 브로커가 구남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한국으로 달아난 사람을 죽여주면 빚을 갚아주고 거액도 챙겨주겠다는 것이다. 구남은 한국으로 밀입국하지만 자신이 죽이기로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살해되고 누명을 쓴 구남은 도망자 신세가 된다.
‘황해’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무술 유단자인 중국 동포를 시켜 사업상 원한 관계에 있던 건설사 사장을 살해한 건설용역업체 대표가 범행 7개월 만에 붙잡혔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돈이 궁했던 중국 동포는 청부살인 제의를 받아들였다. 국내에서 조선족을 이용한 청부살인이 검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우리나라에서 청부살해 사건은 심심찮게 벌어진다. 과거에는 조직폭력배 등에게 돈을 주고 살인을 사주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생활고를 겪는 조선족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반인에게 살인을 의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살인 행위를 사고파는 방식도 ‘진화’하는 모양이다. 이런 무서운 사회에 살고 있다니 섬뜩하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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