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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보조회계사 삶의 내면 묘사한 ‘異名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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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대표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書’ 완역
“적막에 잠긴 내 방에서, 슬픔으로 나는 글을 쓴다. 항상 그랬듯이 혼자이며, 앞으로도 항상 혼자일 것이다. 무의미할 것이 분명한 나의 목소리는 수천의 목소리의 본질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낮은 곳에서 한숨 같은 글을 쓰는 고독한 리스본의 보조회계사 베르나르두 소아레스. 그는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수천 목소리의 본질을. 어린시절부터 늘 혼자였던 그는 단 한 번도 사람들의 무리와 어울린 적 없고, 어떤 단체에도 속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여자를 사랑해본 적도 없다. 그가 써나간 일기 아닌 일기, 메모 아닌 메모가 ‘불안의 서(書)’라는 책으로 남았다.


사실 소아레스라는 인물은 포르투갈 대표시인으로 꼽히는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의 이명(異名)이다. 페소아는 분명한 캐릭터와 전기적 사실을 입힌 인물을 70여명이나 창조해 그들이 시를 쓰고 산문을 발표하게 만드는 독특한 글쓰기를 구사한 인물이다.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노년에 소설을 발표해 공쿠르상을 받았던 정황과는 다르다. 자신을 숨기기 위해 가명을 동원한 게 아니라 많은 ‘나’를 다양하게 실천하기 위한 흥미로운 전략이었던 셈이다. 

페소아가 사무실 책상 위 메모장에서부터 원고지 여백에 이르기까지 깨알처럼 적어놓았던 많은 글들을 연구자들이 페소아 사후 20여년에 걸쳐 정리해 1982년 포르투갈에서 초간된 책이다. 국내에서는 2012년 처음으로 발췌본 ‘불안의 책’이 번역돼 적지 않은 페소아 마니아들을 만들어냈는데, 이번에는 소설가 배수아(사진)가 독일어본을 텍스트로 800쪽이 넘는 두툼한 완역 ‘불안의 서’(봄날의책)를 선보였다.

“나는 단지 꿈을 꾸었을 뿐이다. 그것이, 오직 그것만이 내 삶의 의미다. 내게 진실로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내면의 삶이다. 내 꿈의 창을 열고 거리를 내다보고 있으면 나는 나 자신마저 잊어버린다. 모든 걱정과 근심도 나를 떠나 훨훨 날아가버린다.”

소아레스, 아니 페소아는 시종 서리 낀 유리창 너머 안개 자욱한 풍경을 묘사하듯 내면의 풍경을 나직하고 몽환적인 톤으로 그려낸다. 그는 “상상력이 끔찍하게 빈곤한 경우에나 실제로 뭔가를 느끼기 위해 장소의 이동이 필요한 법”이라면서 “존재 자체가 이미 여행”이라고 규정하는 인물이다.

“나는 인생이 집과 같다고 본다. 명부(冥府)로부터 올라온 우편마차가 나를 데리러 오기까지 그 안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집이다. 마차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어차피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생의 내면을 불안한 감수성으로 섬세하게 적어내려간 페소아의 ‘아름다운 일기’에는 잠언 같은 성찰이 도처에 박혀 있다. 페소아의 부친은 다섯 살 때 죽었고 모친이 재혼한 외교관을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고독한 성장기를 보냈다. 열일곱 살 때 귀국해 리스본대학 문학부를 다니다가 자퇴한 후 47세에 죽을 때까지 상업통신문 번역가로 생계를 꾸렸다. 파블로 네루다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시인으로 꼽히는 페소아도 생전에는 소수의 포르투갈 지성인을 제외하곤 일반 독자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김소연 시인은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책 한 권이 있다는 사실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발문에 썼고, 배수아는 “이 세상은 페소아를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로 나뉠지도 모른다”고 역자 후기에 극진한 애정을 고백했다. 

사후 20여년 만에 ‘아름다운 일기장’이 공개된 포르투갈 대표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그는 생전에 70여명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을 창조해 그들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독특한 글쓰기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배수아는 “발췌본을 읽은 후 페소아에 끌린 독자들은 완역본에 대한 갈증이 컸을 것”이라면서 “우연히도 ‘불안의 서’ 오디오북을 들으며 독일에서 귀국하던 참에 번역 의뢰를 받고 속으로 크게 놀라고 감동했다”고 전했다.

독일어 중역본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늦게나마 전체 분량이 완역됐다는 사실은 페소아 마니아는 물론 오래 곱씹을 깊은 독서체험을 바라는 독자들에게도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느리고 텅 빈 시간 슬픔이 영혼을 가득 채우며 차오르는 내면’을 기록한 페소아는 이렇게 진술했다.

“다만 나를 위해 썼을 뿐인 이 일기를 사람들은 몹시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움이 바로 나의 자연스러움이다. 정신의 생애를 세밀하게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 외에 내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이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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