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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10〉 ‘춘추전국시대’의 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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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02 21:25:50 수정 : 2014-03-17 13: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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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라는 명칭이 만발하고 있다. 신문·방송·잡지 할 것 없이 이 이름 들어간 제목이 적지 않다. 본문 또한 마찬가지다. 도대체 춘추전국시대가 뭔데, 어떤 시대여서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널리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것일까? 또 어떤 의도로 이 명칭은 활용되고 있나?

#1.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김연아에게는 2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 사이 여자 싱글 부문에는 압도적인 기량을 보이는 선수가 없어 춘추전국시대에 가까웠다.

#2. 한국이 올림픽 메달을 휩쓸던 90년대와 달리 세계 남자 쇼트트랙은 캐나다·러시아·중국 등이 빠르게 성장하며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다.

#3. 소녀시대 ‘미스터미스터’ 티저, 걸그룹 춘추전국시대 ‘이걸’로 올킬! “대박”

#4. 이광준 전 시장의 도지사 출마 선언으로 무주공산이 된 춘천시장 자리를 놓고 9명의 입후보 예정자들이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며 춘추전국시대를 예고했다.

#5. 미용학원 춘추전국시대, 꼼꼼히 따져보고 선택해야

정치·사회뿐 아니라 체육·연예·정보기술(IT) 부문 등의 뉴스에 이르기까지 이 말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인터넷 글쓰기에서도 이 말은 거침없다. 이쯤 되면 이 ‘춘추전국시대’는 가히 이러이러한 상황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뚜렷한 한둘 또는 셋 정도의 (주도) 세력이 없이, 여러 세력이나 사람이 서로 경쟁하는 모양새를 말함이다.

기원전(紀元前·BC) 770∼기원전 206년, 춘추(春秋)시대와 전국(戰國)시대를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진시황의 통일왕조로 이어지는 하·상·주의 중국 고대왕조 이후 시대 구분이다. 그 시대, 우리 역사는 고조선의 장(場)이다. 석가모니 탄생(BC 600년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재위 BC 336∼BC 323)의 동방 원정 등이 연대표에 나란히 오른다.

토사구팽(兎死狗烹), 관포지교(管鮑之交), 어부지리(漁夫之利) 등 비교적 익숙한 한자숙어가 생겨난 기간이다. 땔나무 더미에서 살며 쓰디쓴 쓸개를 맛본다는 이 시기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은 동양 복수 이야기의 서막(序幕)이라 할 만하다. 이 와신상담과 연결되는 고대 중국 최고의 미인 서시(西施) 이야기는 미인계(美人計)의 대표에 해당한다.

제·진·초·오·월 등의 춘추5패(覇)와 진·초·제·한·위·조·연 등의 전국7웅(雄)은 그 시대 ‘천하(天下)’를 할거했다. 천하는 중국 대륙의 가운데 토막, 즉 중원(中原)으로 이해하자. 황하(黃河) 중류 지역, 여러 세력이 주도권 쟁탈전을 그치지 않았던 무대다. 5패의 패(覇)는 두목 또는 수령, 7웅의 웅(雄)은 영웅의 뜻이다.

영웅의 무리들[군웅]이 세상을 나눠 가진[割據(할거)] 모양새였으니 그저 평온하기만 했을까? 기존 세력에 도전하는 하극상(下剋上)과 승자독식의 약육강식 등 분열의 시대, 그 복잡다단한 드라마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하는 한자문화권의 오늘날 언어생활에서 이렇게 은유법(隱喩法)의 도구로 쓰이게 됐다.

역사의 두께와 그 언저리에 달라붙은 더께는 이렇게 문화가 되면서, 말글에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은 거꾸로 역사의 속살을 암시한다. 걸그룹과 미용학원의 춘추전국시대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그 시대가 동양의 마음을 찬란하게 꽃으로 피워 올려 인류에 기여하는 바를 지나치기 쉽다. 후한 사람 허신(許愼·서기 30∼124)이 저서 ‘설문해자(說文解字)’로 동양문명의 핵심인 문자, 즉 한자를 가지런히 정리하기 훨씬 전에 공자(孔子)를 비롯한 사상가들은 초기 한자로 의식(意識)의 이 영롱한 구슬을 꿰었다.

전국시대 군주와 신하(장수) 사이의 신표(信標)인 호랑이 부절(符節)과 탁본. 두 개가 한 쌍인 신표는 군사 지휘나 전쟁 수행 등을 위한 표시다.
이것이 또 하나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제자백가다. 여러 학자[諸子]들이 수많은 학파[百家]를 이루고, 새들이 울 듯 다투어 부국강병의 방안을 내놓았다. 이른바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유가·묵가·법가·도가·명가·병가 등으로 분류한다. 정치와 사회사상으로부터 지리나 농업, 문학 등의 다양한 분야를 다뤘고 오늘날 동양철학의 바탕이 됐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로 시작하는 논어(論語)로 대표되는 공자의 유가(儒家)는 어질고 자애로운 성품인 인(仁)과 함께 정명론(定名論)을 세웠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정명론은 사물과 그 이름이 서로 맞아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공자의 초상화. 춘추전국시대를 풍미한 여러 학자들 가운데 공자가 창시한 유가(유교)는 후대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스스로[自] 그렇게[然]’ 놓여있는 자연의 본디에 따르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철학 도가(道家)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도덕과 신선(神仙)사상의 도가는 유가와 함께 그 시대 사상의 쌍벽을 이룬다. ‘꿈에 본 그 나비가 나인가, 내가 그 나비인가’ 하더라는 이야기,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은 지금도 동양적 명상의 화두(話頭)다.

미친 바람과 성난 파도, 질풍노도(疾風怒濤·Sturm und Drang)도 ‘춘추전국시대’와 비슷한 형식의 비유어다. 18세기 후반 기존의 계몽주의에 반항하면서 감정의 해방·독창성·개인주의 등을 앞세운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저자), 실러(‘군도’ 저자) 등의 의식 사조(思潮)를 이르는 말인데, 격정적인 저항과 같은 현상이나 움직임 등의 표현하기 위해 자주 쓴다.

역사(책)의 여러 개념들은 이렇게 세상의 여러 현상과 이치를 가리키는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 말과 글의 속뜻을 품은, ‘맥가이버 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 ceo@citinature.com

■사족(蛇足)

춘추(春秋)는 세월, 해[년(年)]를 이르는 말이다. 가을 글자 추(秋)는 벼 화(禾)와 불 화(火)를 잇대서 쓴다. 벼를 (불로) 말리는 수확의 이미지다. 상당수 한자책들은 그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한자는 생긴 모양새 또는 짜임인 구조만큼이나 역사성이 중요하다. 벼와 불을 연관시키는 것은 짜임에 관한 관찰이다. 초기 글자인 갑골문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까지는 당연히 그렇게 보고 해석했다.

한자의 역사는 때로 의외의 반전(反轉)으로 문명의 여러 발자국을 보여준다. 갑골문과 금문(金文)의 ‘秋’ 글자는 메뚜기 그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월 흘러 소전체(小篆體)에 이르러 오늘의 모습과 흡사해졌다. 메뚜기 그림이 화(禾)자로 간략하게 바뀌었다.

갑골문 가을 추(秋) 자의 간략한 그림. 김대현 편저 ‘다산 천자문’에서 발췌했다.
어원인 갑골문을 볼 때 메뚜기를 불에 굽는다(구워 먹는다)는 풀이가 설득력이 있다. 농작물을 해치는 메뚜기 떼를 잡기 위해서 들에 불을 놓았다는 풀이도 있다. 그러나 메뚜기를 잡아 구워 먹는 우리의 식습관이 글자에 나타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은 메뚜기의 식용이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자학자 진태하 박사의 설명이다.

메뚜기를 불에 구워 먹는 우리의 조상 동이족에 의해 그려진(만들어진) 글자로 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뱀 무서워 집[면(?)]에서 돼지[시(豕)]를 키웠다는 글자 집 가(家)자가 우리 풍습의 반영인 것처럼, ‘秋’도 메뚜기 구워먹은 계절을 그린 우리 조상들의 글씨일 것이라는 유추다. 당시 문자 발생지인 황하(黃河)나 발해만 일대에서는 여러 종족이 섞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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