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55·여)씨는 발달장애 딸(25)과 날마다 ‘전쟁’을 치른다. 체중 조절을 위해 간식을 거르기라도 하면 딸은 물건을 집어던지고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다.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자기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정씨 남편은 중풍과 뇌출혈로 12년간 투병 생활을 하다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매달 딸에게 들어가는 돈만 100만원에 달한다. 딸이 특수학교를 졸업한 뒤 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주간보호 프로그램에 보냈지만 공격성향 때문에 2년 전 쫓겨났다. 입원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아 나섰지만 보호시설만을 권유할 뿐 딸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정씨는 “딸을 보호해줄 시설을 찾는 것은 물론 치료도 포기했다”면서 “현상유지만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 딸과 같은 성인 발달장애인이 전체 발달장애인(19만163명)에서 72.7%를 차지한다. 부모들은 발달장애를 앓는 자녀가 성장할수록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생계와 주거, 취업, 건강 등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령기의 발달장애아동이 제도권 내에서 미흡하나마 이용할 수 있었던 교육, 의료, 지역사회 이용시설 등의 서비스는 성인이 되면 대부분 종료된다. 이후에는 자립을 위한 취업이나 직업훈련 지원, 변변한 보호시설도 없이 사실상 방치된다.

서울에 사는 김모(53·여)씨는 최근 발달장애 아들(24)을 서울시내 한 시설에 맡겼다. 문제행동이 심한 아들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그동안 강원도에 있는 한 시설에 맡겼지만 월 140만원의 비용이 부담스러워 1년6개월 만에 어렵게 집 근처 시설로 옮긴 것이다. 이곳은 환경은 열악하지만 강원도 시설에 비해 비용이 싸다. 그는 아들을 시설에 맡기고선 다른 발달장애아동의 등하교와 일상생활을 돕는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정작 우리 아들은 다른 시설에 맡기고 다른 아이를 돌보고 있는 웃지 못할 생활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가 특수학교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막대한 경제적 부담에 시달린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최근 내놓은 ‘성인 발달장애인 가족의 욕구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성인 발달장애인의 주보호자는 부모 89.7%, 형제자매 3.9%, 조부모 1.9% 등으로 나타났다. 자립을 하지 못한 성인 발달장애인을 가족이 책임지는 셈이다. 부모의 연령은 50대가 50.9%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60대 이상도 15.9%나 됐다.
성인 발달장애인에 대한 의료나 재활치료 정책 등도 전무하다. 발달장애인은 증상이 생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료해야 하지만 학령기의 제도권을 벗어나면 부모가 정부 지원 없이 진료기관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
장애인단체와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3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 ‘21회 세계장애인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발달장애인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행동은 이날부터 한달 동안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와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위한 릴레이 캠페인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나쁘자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김범준 기자 |
칠순을 바라보는 유모(67·여)씨는 아들(44)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지적장애 1급인 아들은 지하철 청소, 유치원 돌보미 등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시간제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7월 직장에서 해고된 후 4개월째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씨는 “아들이 20대 중반에 매달 15만원을 받고 기숙공장에서 일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면서 “내가 죽어도 아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일터가 있었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201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발달장애인의 취업률은 16.5% 정도다. 월평균 급여는 40만1600원. 발달장애인은 전체 15개 장애유형 중 임금은 가장 낮고 근속기간도 가장 짧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장애인 재활작업장의 경우 성과와 효율성이 평가기준인 탓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들은 작업장에서 밀려나는 형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성인 발달장애인들은 구직을 위한 정부 지원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발달장애인의 구직 지원시 필요 사항으로 23.1%가 직업훈련을 꼽았다. 이어 관계기관의 취업 알선(11.1%), 장애인만을 위한 별도작업장(9%) 등을 희망했다. 그러나 직업재활 서비스를 이용해봤다는 응답은 2.5%에 그쳤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이복실 박사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경우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제도권의 서비스가 대부분 종료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인 발달장애인은 부모들이 노년기에 접어들어 의존과 부양을 필요로 하지만 장애자녀 돌봄에 대한 부담으로 자유로울 수 없어 어려움에 직면한다”면서 “성인기에 요구되는 직업, 자립, 부모 사후대책 등을 포함해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준·이재호 기자 yj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