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요오∼!” 괴조음에 이은 속사포 발차기에 일본도를 휘두르던 무인들과 함께 푸른 눈을 가진 거구의 역사들도 쉬이 나가 떨어진다. 쌍절곤과 다부지고 단단한 역삼각형 상체 근육, 위아래가 한벌로 붙은 노란색 트레이닝복. ‘브루스 리’ 이소룡의 이미지다.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특히 올해는 이소룡 40주기로 홍콩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소룡 동상 제막과 대규모 전시회 등을 열고 있다. 영국에서도 다큐멘터리와 함께 그의 출연작을 연속 방영한 데 이어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전파를 타는 등 그에 대한 관심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가 주연한 ‘정무문’이 29일 원형을 그대로 살린 리마스터링으로 40년만에 재개봉 해 국내 팬들과 만난다.

이소룡식 액션의 시발점이자 최고 무술영화로 평가 받는 ‘정무문’은 그의 두 번째 출연작으로, 오늘날에도 꾸준히 리메이크가 거듭되고 있다. 홍콩 출신의 세계적 액션 배우 전쯔단(견자단)과 리롄제(이연걸)가 ‘정무문’의 리메이크작을 통해 스타로 등극했을 만큼 ‘정무문’은 중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정무문’ 리메이크판의 주연 배우로 캐스팅되는 것은 곧 차세대 스타 탄생을 예약해 놓는 셈이다.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인정받는 영화 ‘정무문’은 스승의 복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열혈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긴 세월 동안 회자될 정도로 영화는 당시 큰 인기를 누렸으며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화제를 모았다. 일제치하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반일감정과 민족의식을 다뤘기 때문이다.
정무문의 창시자이자 태극권의 사부인 허영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온 첸(이소룡)은 사부의 주검 앞에서 세상을 잃은 듯 오열한다. 사부가 독살당한 사실을 알게 된 첸은 복수를 위해 일본 무인들이 운영하는 홍백파의 도장을 찾아가 그간 어디서도 보지 못한 현란한 발차기와 쌍절곤으로 수십명의 관원들을 단숨에 쓰러뜨린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이소룡은 이 영화를 통해 이웃 나라를 침략한 일제의 부당함과 간교함을 고발하고, 일제의 앞잡이가 된 동포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중국인 모두가 일제에 맞서 당당히 싸울 것을 주장한다. 1973년에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지금 다시 보자면 대사나 감정 처리 부분 등에서 관객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요소가 다소 보이지만 그리 문제될 만큼의 분량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수와의 결투 신은 이후 견자단의 ‘정무문: 100대 1의 전설’로 제목이 붙어 리메이크될 정도로 유명하다. 특히 전열을 갖추고 자신을 향해 일제히 총구를 겨누고 있는 일본군을 향해 이미 죽기로 결심한 첸이 번쩍 뛰어올라 날라차기를 시도할 때 동시에 총성이 울리면서 정지되는 마지막 장면은 홍콩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채 40년이 흐른 지금도 명장면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처럼 그가 여전히 팬들의 가슴속에 남아 사랑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이전의 무술영화에서 보여졌던 액션 공식을 확 바꾸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무술 시퀀스는 서로 짜맞춘 듯한 어색한 동작들과 손으로 치고받는 액션이 중심을 이뤄 극의 사실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소룡은 상대를 한방에 가격하는 발차기와 함께 결정적인 정권 찌르기를 통해 짧고 간결하게 판을 정리하는 그만의 색다른 리얼 액션 실전무술을 선보였다.
이 같은 새로운 액션은 이소룡과 그의 무술, 그의 영화가 동양권의 울타리를 벗어나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영화계에서 주를 이루던 총기나 와이어 액션과 달리 온전히 인간의 몸만을 사용한 액션이 기존 액션영화의 틀을 깨며 액션 팬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는 생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액션영화 시장에서 무예영화라는 완전히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것이다. 서부영화에서는 오로지 총만 다루지만 여기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술이나 특수효과를 빌리지 않고 인간의 육체로만 표현될 것이다”라며 순수 액션에 애정을 보인 바 있다.
그의 작품들은 액션이 단순한 싸움이나 격투가 아닌 예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경험케 했다. 이소룡은 작품에서 구사하는 무술이 카메라 장난을 통한 눈속임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 원 컷으로 찍었다. 특히 ‘정무문’에서는 이소룡의 절권도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호쾌한 액션이 등장할 뿐 아니라, 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쌍절곤을 처음 선보인다. 이후 이소룡과 쌍절곤은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그는 상대방에게 결정타를 날린 뒤 보여주는 분노와 슬픔이 교차된 묘한 표정으로도 유명했다.
◆캐릭터 이소룡
40∼50대 남성들이라면 한번쯤 그때 그 시절 그의 영화를 보고, 그의 액션을 따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그의 캐릭터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통해 활용되고 있다. 그가 진정한 스타 아이콘으로 남은 데에는 작품들을 통해 항상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가 내는 여러가지 괴조음은 할리우드 영화 ‘킹콩’의 괴수 소리에서 착안해 몇 개의 동물 소리와 본인의 목소리를 합성한 것이다.
캐릭터 면에서 이소룡은 여타의 액션 스타들과 차별된다. 1970년대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은 정정당당한 복수를 하는 클라이맥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통쾌한 역전극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소룡은 달랐다. 영화 시작부터 탁월한 무술 실력을 겸비한 고수로 등장한다. 초반에 그가 상대에게 맞거나 굴욕을 당한다 해도 그것은 결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실력을 감추고 인내하는 설정이다.
이소룡의 영화에선 이소룡보다 더한 최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그가 출연하는 모든 영화는 그가 최강자임을 확인시켜주는 과정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로 인해 이소룡이라는 배우와 영화 속 그의 캐릭터는 영화계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강렬한 캐릭터는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드래곤’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임 ‘철권’의 캐릭터 ‘마셜로’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창조되어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독보적인 캐릭터로서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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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전설, 이소룡의 가장 강렬한 액션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정무문’이 29일 40년 만에 재개봉 돼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
불후의 스타 이소룡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존재감이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실제로 출연했던 작품보다 더 많은 영화에 등장하고 지금도 세대와 시대를 초월한 팬들이 끊임없이 그에게 뜨거운 애정을 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명 감독과 스타들은 자신의 우상으로 이소룡을 꼽으며 그에게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은 지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가진 오픈 토크를 통해 “내가 영화라는 것에 빠지게 된 것은 이소룡 덕분”이라고 밝혔다. ‘짝패’ ‘부당거래’ ‘베를린’ 등 액션감독 류승완 역시 “이소룡은 영화 스타라기보다는 한 시대를 휘어잡고 불꽃처럼 살다간 하나의 아이콘이었다”며 그에 대한 열렬한 팬심을 드러냈다. ‘비열한 거리’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누구보다 이소룡을 향한 애정을 과감 없이 드러낸 유하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서 오마주는 물론이고,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라는 책을 출판하기까지 했다.
‘펄프 픽션’ ‘황혼에서 새벽까지’ ‘장고: 분노의 추적자’ 등을 통해 늘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킬빌’에서 주인공 우마 서먼에게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혀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1978)를 향한 오마주를 담았다. 이소룡의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고 그의 대역까지 맡았던 청룽(성룡)은 “나는 이소룡 같은 신이나 영웅이 될 수 없다”며 우상이 된 이소룡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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