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들이 200자 원고지 2000매짜리 장편소설을 쓸 때 보통 10배인 2만매의 초고를 쓴 다음 줄이거든요. ‘스토리헬퍼’를 활용하면 써야 할 초고 분량을 1만매가량 줄이는 효과가 기대됩니다.”
‘영원한 제국’ ‘지옥설계도’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인화(47·사진)씨가 소설 창작을 돕는 컴퓨터 프로그램 ‘스토리헬퍼’를 만들어 18일 언론에 공개했다. 뭔가 쓸 주제는 정했는데 줄거리를 잡지 못해 고심하는 작가들한테 소설을 무슨 장면으로 시작해 어떻게 전개할지, 반전은 어디에 넣으면 좋을지 등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는 개별 사건의 종류는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배경과 주인공만 다르고 이야기 구조는 거의 같은 작품이 많은 이유가 그겁니다. 일례로 영화 ‘아바타’와 ‘늑대와 춤을’은 서로 87%의 유사성을 보이죠. ‘스토리헬퍼’는 기존 소설·영화 등을 분석해 추출한 205개의 기본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야 좋을지 조언합니다. 처음에 이야기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시간을 낭비하는 오류를 없애주는 것이죠.”
대중성을 추구하는 장르소설 작가들이야 ‘스토리헬퍼’에 흥미를 느끼겠으나, 순수문학의 예술성을 고집하는 작가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 같다. 하지만 이씨는 “순수문학·장르문학 구분과 상관없이 정보기술(IT)에 익숙한 작가라면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원래 이날 언론사 취재진 앞에서 ‘스토리헬퍼’를 직접 시연해보는 순서도 예정돼 있었다. 작가가 쓰려는 주제를 ‘스토리헬퍼’에 입력한 뒤 그 도움을 받아가며 척척 창작을 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중간에 다운되는 등 차질이 빚어졌다. 주최 측은 “서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보완을 하겠다”며 거듭 사과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스토리헬퍼’가 첫선을 보이는 무대에서 그만 체면을 구긴 셈이다.
‘스토리헬퍼’ 제작·보급은 이화여대 디지털스토리텔링 연구소와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이 함께한다. 재단 홈페이지(www.ncfoundation.or.kr)를 방문하면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이용할 수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