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 100엔 공습 하루 만에 다시 1.86% 하락
수출중심 자동차·조선 '악∼’ 내수주 건설·IT 업종 '휴∼’ 지난주 국내 증시는 불과 이틀 만에 냉온탕을 오갔다. 9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증시가 급상승했지만 바로 다음날 엔·달러 환율 100엔 돌파 소식에 폭삭 주저앉았다.
이 흐름을 주도한 것은 시가총액 100위 이내의 대형주들이다. 대형주들은 금리 인하 당일 1% 이상 주가가 급등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이튿날 ‘엔저’의 최대 피해종목으로 인식돼 급락했다.

9일 한국은행이 ‘깜짝’ 금리 인하를 단행하자 한동안 증시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던 대형주들이 일제히 반등했다. 당일 코스피 대형주지수는 1929.81을 기록하며 전일보다 1.31% 올랐다. 특히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며 투자자들의 속을 썩였던 건설·조선·해운주의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코스피 건설업지수는 139.97로 하루 전보다 3.35% 급등했다. 조선기업과 해운기업이 포함된 코스피 운수장비업지수도 2290.86으로 1.32% 올랐다. 전기전자(1.68%), 화학(1.60%)도 큰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형주의 상승세는 다음날 급락세로 전환했다. 엔·달러 환율이 4년 만에 100엔선을 돌파한 탓이다. 코스피 대형주지수는 10일 1893.89로 1.86% 하락했다. 운수장비(-2.28%), 화학(-1.43%), 철강금속(-2.08%), 전기전자(-2.21%) 등 대형주가 많이 포함된 업종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건설업은 -0.92%로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반대로 통신업은 0.72% 상승했다.
당초 증권가에서는 금리 인하의 혜택이 대형주 전반에 미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적극적인 경기부양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그동안 경기 부진에 시달리던 대형주 주가에도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러나 엔저 충격으로 대형주에 미친 금리인하 효과는 하루를 가지 못했다. 특히 자동차·조선 등 수출 중심 대기업들이 엔저로 입은 타격이 컸다. 반면 건설·통신 등 내수 비중이 큰 기업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덜했다. 금리 인하와 엔저라는 두 가지 사건이 겹치면서 대형주 안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과 경쟁구도를 형성한 자동차주는 대표적 피해주로 거론된다. 2008년 이후 이어진 엔화 강세환경에서 크게 성장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엔화 약세 환경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삼인방인 기아차와 현대차, 현대모비스는 엔저 충격이 가시화한 10일 각각 3.34%, 2.33%, 1.92% 주가가 내렸다.
조선업도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국내 조선소와 일본 조선소들은 벌크선과 탱커, 중형 컨테이너선 등을 두고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철강 역시 엔저 우려가 큰 업종이다. 자동차, 조선, 기계 부문의 국내 기업들이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에 밀릴 경우 철강 공급 축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엔저 피해가 장기간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올 1분기 동안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엔저에 대한 우려가 국내 증시에 상당부분 반영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엔·달러 환율이 상징적인 100엔을 돌파했지만 증시 발목을 묶을 정도의 악재가 되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엔저의 폭풍이 한숨 잦아들게 되면 잠시 숨죽여 있던 금리 인하의 효과가 다시 나타날 공산이 크다.
전기전자(IT) 업종은 금리 인하 효과를 크게 볼 업종으로 꼽힌다. 글로벌시장에서 일본 기업에 대해 비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일본으로부터의 원재료 수입 비중도 커서 엔저 타격이 적기 때문이다. 통신·유통 등 내수주 역시 금리 인하의 수혜자로 꼽힌다. 내수의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금리 인하로 인한 경기부양의 효과가 환율효과보다 크다.
경기 부진으로 고전하며 다수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까지 꼽혔던 건설업계도 금리 인하로 한숨 돌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부채 비율이 높은 건설사들의 경우 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직접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는 금리 인하로 인한 주택담보대출 증가로 부동산 매매 수요가 느는 등 수혜도 기대되고 있다.
노기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주택 시장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가계부채 부담 완화”라며 “주택 시장의 본격적인 반전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를 견인할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되었다는 점은 건설업종에 긍정적인 변화”라고 밝혔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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