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공동부양’ 책임의식 우선돼야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이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 출산하는 자녀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이 작년의 1.22명으로부터 극히 소폭이긴 하나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에 정부는 한껏 고무된 듯하다. 하지만 저출산 해소를 위해 출산 및 육아지원에 유례없이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어도 출산율이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음은 어떤 이유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던 시절이 불과 60여년 전이요, ‘세 살 터울 셋만 낳고 서른다섯 단산하자’던 ‘333 운동’의 열기도 50년의 세월이 채 흐르지 않았는데 이젠 명실공히 초(超)저출산 국가 대열의 선두에 선 우리네 상황을 이해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1980년대 초반 이미 출산율 급락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건만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며 저출산 유도정책을 지속했던 과거의 뼈아픈 경험은 반복하지 말 일이다.
80년대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출산율 또한 동반 상승한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등의 경험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교훈을 던져준다. 여성의 취업률과 출산율 동반 상승의 배경에 ‘일·가족 양립 정책’의 성공적 실행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곧 유럽식 일·가족 양립 정책은 여성으로 하여금 출산 후에도 큰 갈등없이 경력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주었음은 물론 남성의 삶에도 매우 소중한 경험임을 남성 스스로 깨닫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둘째 및 셋째 자녀의 출산을 결정할 때 남편의 적극적 육아 참여가 가장 영향력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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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이러한 차이의 이유인 즉, 유럽에서는 공적영역의 젠더 평등과 사적영역의 평등한 성역할 분업이 보조를 맞춰 진행된 반면, 유교자본주의 국가는 일터에서의 젠더 평등과 가족에서의 성역할 분업사이에 지체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여성 입장에서는 이중역할 부담을 피하기 위해 커리어와 출산의 빅딜전략을 선택함으로써 커리어를 중시할 때는 결혼을 포기하거나 출산을 지연시키고, 출산을 선택할 때는 경력단절을 불사하는 관행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2인 부양자 모델에 기반하여 일터에서도 젠더 평등을 실현하고 가족에서도 부부간 책임과 역할을 공유하게 된다면 최소한 지금의 위기 상황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봄직도 한데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아버지 입장에선 ‘일·가정 양립정책이 확대될수록 아이 낳고 싶은 생각은 더욱 없어지리라’가 솔직한 심경이니 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이데올로기는 눈에 띄게 감퇴되고 맞벌이가 규범화된 상황에서 여성은 충분히 밖으로 나가 생계부담을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남성은 여전히 가족 안으로 들어와 책임과 의무를 공유하길 꺼리고 있는 상황 속에 저출산 해법의 고리가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남성의 전통적 성역할 의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지 않는 한 여성의 출산 및 양육 부담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는 출산 기피 내지 초저출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직시하고 향후 저출산 정책은 양육기의 아버지와 잠재적 아버지를 필히 일차적 타깃으로 삼아야 하리란 생각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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