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하지만 모두가 발가벗은 삶
199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신용카드 회사에서 보내 온, 일찍이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월 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소비 패턴과 자주 가는 쇼핑몰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도표를 곁들인 분석 데이터를 가득 채운 대금 청구서였다. 카드회사 앞에 갑자기 벌거벗은 기분이 됐다. 20여 년 전 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다.
미국 월마트는 금요일 저녁이면 기저귀 진열대 옆에 맥주를 나란히 놓고 판다. 당연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금요일 밤 맥주의 매출이 껑충 뛰었다. 기저귀를 사러 온 30, 40대 가장이 옆에 보이는 맥주 6팩을 같이 집어든다. 부담 없는 주말 저녁이 아닌가. 마케팅 감각 때문이 아니다. 빅 데이터가 한몫했다.
신용카드를 분실하고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카드회사로부터 연락이 온다. 카드가 도용된 것 같아 정지시켰다고. 카드 주인은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착실한 가장이다. 주말 밤, 술집을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카드는 주말 저녁 술집과 주유소 등에서 사용됐고 이를 포착한 카드사가 정지시킨 것이다. 카드사의 친절 때문이 아니다. 빅 데이터 덕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빅 데이터의 활용이 급증하고 있다. 뉴욕 경찰은 거리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서 얻어지는 빅 데이터 중 범죄자의 문신을 인식하면 얼굴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착안해 범죄 예방률과 검거율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
구글은 2008년 이후 해마다 미국질병통제센터(CDC)보다 열흘가량 앞서 독감 유행 시기를 예측한다. 독감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늘어나면 발열, 기침 등 감기와 관련된 단어를 검색하는 빈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구글이 정부보다 빠르고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대용량 정보를 모아서 족집게처럼 필요한 정보를 솎아내는 이른바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이 이 같은 모든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다가오는 ‘빅데이터(big data)’는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생긴 신생어다. 데이터를 파고들어 의미 있는 흐름을 찾아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빅 데이터가 가능한 것은 대용량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 갖춰지면서부터다. 낱개로는 전혀 가치가 없던 데이터가 모여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고객의 데이터를 모두 모아 분석해 지갑을 잃어 버렸는지, 어떤 타입의 배우자를 찾고 있는지, 금요일 저녁에 아내 심부름으로 기저귀 박스를 사러 오는 가정적인 남편인지도 다 알게 된 시대다. 귀신이 곡할 상황을 빅 데이터가 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데이터에서 어떻게 새로운 것을 읽어내는가 하는 판별력과 분석력이 중요하게 되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떠오르는 직업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무질서한 것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통찰력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역으로 이제 우리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발가벗겨지는 ‘네이키드 소사이어티(naked society)’에 살게 됐다. 내가 어느 술집 단골인지, 또는 성인용 사이트를 즐기는지 아닌지 등을 누군가가 속속이 알게 되는 시대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이제 우리는 어마어마한 새로운 빅 브러더와 함께 사는 시대가 됐다. 인터넷의 편리함에 빠져 있는 동안 빅 데이터는 가공할 위력으로 인간 세상에 등장했다. 그래서 나는 빅 데이터가 지배할 미래가 무척 두렵다.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교수·매체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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