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홀대 등 섬세 묘사 “우리나라 남자들 참 쓸쓸합니다. 가부장제의 절대적 권력은 진작 없어졌는데 그 관습과 사고, 허세는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어떡하겠어요, 그렇게 길러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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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주대씨는 시집 맨 끝에 “세계는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나와 동일하게 나이가 들어갔다”고 적었다. |
시인 김주대(47)씨의 다섯 번째 시집 ‘그리움의 넓이’(창비)는 남자의 일생을 노래한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기쁨도 잠시, 생계의 압박이 두 어깨를 짓누른다. 다른 남편이나 아빠보다 더 못해줬다는 죄책감은 두고두고 가슴 한쪽을 할퀸다. 사내의 머리에 어느새 서리가 내린다.
“여자가 아기의 말랑한 뼈와 살을 통째로 안고/ 산후조리원 정문을 나온다 아직/ 아기의 호흡이 여자의 더운 숨에 그대로 붙어 있다/ 빈틈없는 둘 사이에 끼어든 사내가/ 검지로 아기의 손을 조심스럽게 건드려 본다.”(‘가족의 시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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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맹문재씨는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감을 한탄하면서도 “나는 아직 젊다, 역사를 생각하자”고 다짐한다. |
“아르바이트 끝나고 새벽에 들어오는 아이의/ 추운 발소리를 듣는 애비는 잠결에/ 귀로 운다.”(‘부녀’)
시인 맹문재(49)씨의 네 번째 시집 ‘사과를 내밀다’(실천문학사)는 지천명을 앞둔 40대 남성의 서글픔이 짙게 배어 있다. 이제 삶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자녀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비굴함도 견딜 수 있다.
“열한 살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아득한 길 위에 서 있었다/ 손사래에서 포옹까지/ 불안에서 왕성한 웃음까지/ 아랑곳없음에서 다행까지/ 나 혼자 걷기에는 너무 멀다고 느꼈다.”(‘하나님의 등을 떠밀다’ 중에서)
“마흔을 넘기면서 깨달은 사실 중 한 가지는/ 내게 슬픈 웃음이 많다는 것이다// 업신여기는 사람 앞에서도/ 증오하는 상대 앞에서도/ 손해를 당하면서도/ 어느 덧 습관이 된 나의 웃음.”(‘슬픈 웃음’ 중에서)
시간은 화살처럼 날고 누구나 결국 50대가 된다. 아,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정녕 없는 것일까.
“부치려고 하는데/ 손안에 없다// 집에 두고 왔는가?/ 길에 흘렸는가?// 돌아가며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없다// 안타까워 다시 쓰려는데/ 바람이 손을 잡는다.”(‘오십 세’)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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