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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친 중년 남성들에 바치는 ‘위로의 詩’

입력 : 2012-11-23 17:59:45 수정 : 2012-11-23 17: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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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맹문재 시집 나란히
스트레스·홀대 등 섬세 묘사
“우리나라 남자들 참 쓸쓸합니다. 가부장제의 절대적 권력은 진작 없어졌는데 그 관습과 사고, 허세는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어떡하겠어요, 그렇게 길러졌는데….”

시인 김주대씨는 시집 맨 끝에 “세계는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나와 동일하게 나이가 들어갔다”고 적었다.
노년의 남성과 10대 소녀의 사랑을 그린 소설 ‘은교’의 작가 박범신씨의 말이다.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아등바등 젊은 날을 보낸 40∼50대 남성들. 직장에선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에, 집에선 가족의 홀대에 서러움을 삼키다 보면 인생이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남자의 계절’이라는 가을, 삶에 지친 중년 남성을 위로하는 두 권의 시집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시인 김주대(47)씨의 다섯 번째 시집 ‘그리움의 넓이’(창비)는 남자의 일생을 노래한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기쁨도 잠시, 생계의 압박이 두 어깨를 짓누른다. 다른 남편이나 아빠보다 더 못해줬다는 죄책감은 두고두고 가슴 한쪽을 할퀸다. 사내의 머리에 어느새 서리가 내린다.

“여자가 아기의 말랑한 뼈와 살을 통째로 안고/ 산후조리원 정문을 나온다 아직/ 아기의 호흡이 여자의 더운 숨에 그대로 붙어 있다/ 빈틈없는 둘 사이에 끼어든 사내가/ 검지로 아기의 손을 조심스럽게 건드려 본다.”(‘가족의 시작’ 중에서)

시인 맹문재씨는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감을 한탄하면서도 “나는 아직 젊다, 역사를 생각하자”고 다짐한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하룻밤 사이에 어른이 되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아이였던 딸은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 딸이 어디서 딸을 낳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딸’ 중에서)

“아르바이트 끝나고 새벽에 들어오는 아이의/ 추운 발소리를 듣는 애비는 잠결에/ 귀로 운다.”(‘부녀’)

시인 맹문재(49)씨의 네 번째 시집 ‘사과를 내밀다’(실천문학사)는 지천명을 앞둔 40대 남성의 서글픔이 짙게 배어 있다. 이제 삶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자녀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비굴함도 견딜 수 있다.

“열한 살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아득한 길 위에 서 있었다/ 손사래에서 포옹까지/ 불안에서 왕성한 웃음까지/ 아랑곳없음에서 다행까지/ 나 혼자 걷기에는 너무 멀다고 느꼈다.”(‘하나님의 등을 떠밀다’ 중에서)

“마흔을 넘기면서 깨달은 사실 중 한 가지는/ 내게 슬픈 웃음이 많다는 것이다// 업신여기는 사람 앞에서도/ 증오하는 상대 앞에서도/ 손해를 당하면서도/ 어느 덧 습관이 된 나의 웃음.”(‘슬픈 웃음’ 중에서)

시간은 화살처럼 날고 누구나 결국 50대가 된다. 아,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정녕 없는 것일까.

“부치려고 하는데/ 손안에 없다// 집에 두고 왔는가?/ 길에 흘렸는가?// 돌아가며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없다// 안타까워 다시 쓰려는데/ 바람이 손을 잡는다.”(‘오십 세’)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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