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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작사가는 친일파 윤치호 아닌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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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 "2년 걸쳐 확인"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의 작사자가 독립운동가인 도산 안창호(사진) 선생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회운동단체인 흥사단은 내년 5월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2년간 추적한 결과 안창호 선생이 1907년 3월 평양에서 애국가 가사를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흥사단은 이와 관련해 독립지사들의 여러 증언과 새로 발굴한 과거 자료들을 제시했다.

흥사단은 우선 독립지사 윤형갑 선생의 증언을 종손 윤정경(76)씨가 채록한 자료를 소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윤 선생은 “당시 비밀결사체인 신민회를 조직하려고 미국에서 귀국한 안 선생이 평안남도 선천예배당에서 찬미가 ‘백두산과 두만강물이’의 가사를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 곡조에 맞춰 부르는 것을 듣고 시상을 얻어 이틀간 금식기도를 하며 애국가 가사를 썼다”고 증언했다.

흥사단은 또 ‘안 선생이 서서만리현(西署萬里峴) 의무균명(義務均明)학교 학생들에게 조회 때마다 국기에 경례하고 애국가를 부르게 했다’는 내용의 ‘대한매일신보’ 1907년 3월20일자 기사도 근거로 제시했다.

흥사단은 상해 임시정부 시절 3년간 안 선생의 비서를 맡았던 독립지사 구익균(105)옹이 “당시 애국가 작사자에 대해 안 선생에게 묻자 ‘(내가) 맞다’는 답을 들었다”고 증언한 것도 핵심 증거로 내세웠다.

흥사단은 “안 선생이 1908년 2월 ‘태극학보’ 제18호에 ‘애국생’이라는 필명으로 애국가를 찬미하는 시 ‘찬애국가’를 발표한 점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1955년 애국가 작사자를 찾을 수 없다며 ‘작자 미상’으로 공식화했다. 친일 행적을 했던 윤치호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흥사단은 이에 대해 “비밀결사 활동 중이던 안 선생이 애국가가 널리 보급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당시 대성학교 교장이자 명망가인 윤치호에게 애국가 작사자 이름을 양보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밝혔다.

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회 박화만 위원은 “50여년간 애국가의 작사자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친일파 작사설이 퍼지며 애국가의 본질이 왜곡되고 애국가 개정의 목소리도 높았다”면서 “이번 발표가 애국가의 본질과 애국가에 녹아 있는 안 선생의 얼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호 기자 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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