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 클레망 감독. 영화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가난한 청년 톰 리플리가 부자 친구인 필립의 아버지로부터 이탈리아에서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는 아들을 미국에 데려오는 조건으로 거금을 받기로 한 데서 시작된다.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영화는 누벨바그에 대한 도전쯤으로 여겨지며 치밀한 구성, 라스트 신의 절묘한 반전 등에 힘입어 20세기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특히 작품은 영화인의 주목을 받아 1999년 앤서니 밍겔라 감독에 맷 데이먼, 귀네스 팰트로가 등장하는 ‘리플리’란 제목으로 리메이크 된다. 뿐만 아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미스 리플리’라는 이름의 드라마로 이 땅에서까지 등장했다. 세 작품 모두 야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굴절된 가난한 청춘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이탈리아판 ‘청춘의 덫’인 셈이다.
세 작품의 걸개는 비슷하지만 그래도 오리지널이 단연 압권이다. 지중해와 나폴리 근교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영상, 이글거리는 태양과 욕망을 담고 흐르는 니노 로타의 음악까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충격이 워낙 커 ‘리플리 증후군’이란 정신병의 새로운 학명까지 등장하게 된다.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용어인데 바로 이 작품에서 비롯됐다.
이탈리아를 혼자 다녀왔다. 유년 시절을 회고하며 이탈리아의 민낯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성장기 한편의 영화로 인해 이탈리아는 언제나 내 마음의 나라. 그러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로마, 나폴리, 소렌토 등 유명 도시는 쓰레기가 넘쳤으며 버스는 냉방이 되질 않아 찜통더위에 숨이 턱 멎는다. 수년간 계속된 마이너스 성장과 정책 실패로 재정은 거덜 났다. 로마제국의 영광은 간데없고 사람은 피곤해 보이며 거리는 혼란스럽다.
‘태양은 가득히’의 배경을 찾아 나선 나폴리와 소렌토로 가는 44인승 버스는 좌석 간 간격이 너무 좁아 무릎이 아프다. 생수병을 둘 컵걸이조차 없다. 행여 음료수를 쏟을 경우 청소하기 번거로워 버스에는 컵걸이를 부착해 두지 않는다는 기사의 설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안전벨트도 없다. 외지인이 보기에는 나라 전체가 나사가 빠진 것 같다.
상대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한국인이 여름을 맞아 이탈리아로 쏟아져 온다는 현지 한국인 가이드의 목소리는 힘이 넘친다. 이탈리아 사람이 서울에 오면 세 번쯤 놀라 뒤로 자빠진다고 한다. 공항의 쾌적함에 놀라고, ‘뻥’ 터지는 와이파이에 놀라고, 넓고 편안한 27인승 관광버스에 놀라 기절한다는 것이 가이드의 의기양양한 설명이다.
휘청거리는 이탈리아, 누구는 과도한 복지정책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정책 실패로 인한 재정위기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복지정책 탓으로 일방 몰아붙이는 것은 배탈이 난 원인을 포크와 나이프에서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재정 거덜에다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탈리아를 보면 우리는 경제 민주화와 한 나라의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교수·매체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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